brunch

퇴사 후 멈춰 서서 걷기

by 임혜영

쉬고 싶다. 놀고 싶다. 아니 쉬고 싶다. 아니다 신나게 놀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말 안 하면 못 쉴 것 같아서 떠들고 다녔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상 이 말이라도 안 하면 안 쉬고 뭐라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개미는 일을 하는 법. 결국 못 쉬었고 취직했다. 취직을 한 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이 제일 큰일이었다. 나는 미련 없이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아픈 것 빼고는 사고 한번 친 적 없이 자란 내 인생에 큰 경로 이탈을 했다. 퇴사!

후련하게 퇴사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오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말했다.

“너 잘 그만둔 것 같아”

“아직 내가 겪은 일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너 눈빛이 완전히 변했어, 예전에는 물에서 막 나온 물개같이 맑았는데 뭐랄까 누구 한 놈 잡히면 죽일 듯 날카롭게 변해서 주변에 까만 에너지가 풍겨”

“꾸러기 어디 갔어?! 꾸러기 내놔!”

“응 꾸러기 죽었어, 없어”

“아냐 다시 내놔”

“조만간 살려낼게”

“빨리 내놔”

분위기 파악이 빠른 친구였다. 그 친구의 말에 내 결정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원하던 대로 놀기로 결정했다.

나는 쉬면서 산 지 겨우 5개월 된 운동화가 찢어질 정도로 걸어 다녔다. 20년 가까이 살던 동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고향 시민들은 운동 코스로 애용하는 천변 한 번을 제대로 산책하지 못한 세월을 한탄하며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힌 모든 일을 잊기 위해 걸었다. 잠잠했던 족저근막염이 도지고 무릎 통증도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던 천변

그렇게 걷고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디에 말 못 할 내 감정들을 노트에 마구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낡고 오래된 물건을 버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버릴 때 괴로운 감정과 생각도 같이 버리면서 천천히 내 생활을 정리했다.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나에겐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내 현실은 자발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백수였다. 언제까지 쉴 수는 없었다. 마침 코로나까지 기승을 부려 괜한 침잠이 주변을 에워쌌다. 나는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내적 외적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쉬고 있는 부상병 같았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아 계속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쉰다고 말하면 주변 반응은 딱 두 가지였다. “아~ 집이 좀 사나 봐 한가하게 쉰다고 하고 난 한 번도 쉰 적이 없어~” 혹은 “그래 그동안 달려왔으니 코시국에 좀 쉬어가라 그래야 또 달리지”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거나 불안하진 않았다. 자발적 백수가 되어 주변에서 은근히 걱정하며 던지는 말에도 정작 나는 취직 걱정이 안 되었다. 물론 걱정을 1%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냥 뭘 해도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기준을 높게 잡냐 낮게 잡냐 차이일 뿐이었다. 나는 취업을 위한 스펙 준비도 하지 않았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도 취업 관련 서적 코너는 건너뛰고 일반 서적 코너만 가서 책을 사서 읽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나 스펙 같은 자격증 준비해야 하는데 책만 읽고 있어 그런데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안 돼.” 엄마는 “나도 그래 네가 뭐라도 하겠지 쉬어 일단”


엄마와 달리 아빤 걱정이 많았다. 나는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교육이나 학회를 찾아 듣느라 무척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이런 모습만 보고 내가 은둔자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세대 차이가 나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니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였지만 아빠나 남들이 말하는 기준의 진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백수가 날마다 노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딘가 다니며 목에 명찰을 걸거나 사업채 하나는 운영해야 일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길어진 나를 남들에게 소개할 때 꺼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대놓고 하는 잔소리보다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태도가 서글픔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갑자기 큰오빠가 5월에 결혼할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2월에 여자 친구의 존재를 알리더니 3개월 만에 결혼하겠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 나는 큰오빠가 나를 소개할 때 백수라고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무슨 자신감이 튀어나왔는지 취직이 된 곳도 없는데 “나 5월에 돈 벌러 간다. 고향 뜬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되었다. 나는 결국 5월에 취직을 했다. 취직한 곳도 본가와 떨어진 곳이라서 정말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큰오빠 결혼식 날 집안 친지 모두에게 백수라는 소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예식을 마쳤다. 내 인생에 멈춤 버튼이 재생 버튼으로 변했다.


keyword
이전 08화두 번의 탈출: 임상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