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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가장이 되다

by 임혜영

지금 다니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온 날이었다. 면접을 마친 후 고향에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플랫폼 밖으로 오피스텔 건물이 보였다. 속으로 '여기 합격해서 저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싶다. 저 오피스텔에서 노을이 보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며칠 후 나는 합격을 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합격 연락을 받은 후 집 구하는 어플로 직장 주변 자취방을 구하려고 검색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던 그 오피스텔만 딱 하나 나와 있었다. 지금 바로 열차 타고 갈 테니 누구에게 팔지 말아 달라고 바로 전화했다. 부랴부랴 역에 갔다. 집은 내가 원하던 노을이 보이는 북서쪽이었다.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월세 계약을 했다.

자취방 창문에서 본 노을 풍경

웹툰 독립 일기와 예능 독립 만세를 보며 독립을 꿈꾸다가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걱정하고 나는 걱정 안 하는 내 독립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내 생사 확인을 위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까꿍” 7시에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엄마에게 연락이 온다. “잘 잤니?”

내가 혼자 지내게 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걱정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엄마가 너를 어떻게 보내신다니 엄마는 괜찮으시다니?”였고 다른 하나는 “아픈데 혼자 살 수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아픈 걸 제외하고는 혼자 너무도 잘 살 것 같지만 아플 때는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걱정들이었다. 나는 그런 우려와 달리 마냥 신났다. 아파도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약을 먹고 혼자 병원에 가고 엄마에게는 상태를 보고하는 생활을 오래 해왔던 지난 세월이 내게는 혼자 사는 것과 다름없는 익숙한 생활이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퇴근하면 엄마가 항상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 시간 정도 영상통화로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통화를 끝내려고 하면 엄마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나는 “또 우네 울새 여사님” 하고 통화를 종료한다. 요즘은 가끔 영상통화를 한다. 그래도 여전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 통화를 한다. 통화를 하면서 설거지하거나 저녁을 차리거나 저녁을 먹는다. 본가에서는 항상 라디오나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는 아빠 때문에 집이 조용하지 않아서 신경질이 나는데 자취방은 고요하다. 가족들과 살 때는 조용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막상 조용하니 희미하게 들리는 기차 소리마저 반가운 백색소음이 된다. 이 오피스텔에는 야근 많은 직장인만 사는 것인지 세탁기 소리 외에는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으면 진공 상태의 캡슐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니면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조용한 적막을 가르는 세탁기 소리는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 좋아하는 백색소음이 되었다. 매일 나면 시끄럽지만 일주일에 두 번 빨래를 돌리면 집에 손님이 찾아온 것 같다. 세탁기가 돌아가면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그렇다. 빨래가 다 되면 널어야 하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 세탁을 하는 한 시간 동안 나는 머리를 말리고 방을 정리한다. 글을 쓰고 있을 때도 많다. 세탁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글을 쓰다가 세탁 완료 알림이 울리면 빨래를 널고 쉰다. 때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한다. 단조로운 하루가 서서히 마무리된다. 지친 하루는 가만가만히 저물어간다. 암막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한다. 나는 내일 아침 엄마에게 무사히 까꿍 문자를 보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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