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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요가

by 임혜영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으면 간단한 운동은 권장하지만 격렬한 운동은 못 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격렬함의 기준이 나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간단한 운동은 그냥 일상생활에서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만 가능하고 자전거 타기, 걷기, 뛰기, 체육 시간 활동은 모두 하지 못했다. 타고난 기질은 엄마를 닮아서 운동을 정말 좋아하지만 못하게 하니 그 에너지가 분출되지 못하고 몸 안에 갇혀 있었다.

7살 무렵 자전거를 천천히 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아빠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 한 대를 사주셨다. 자전거에 조금 익숙해지면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신나서 자전거를 탔다.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천천히 타라는 말을 무시하고 쌩쌩 달렸다. 자전거 바퀴를 쉼 없이 돌려서 속력을 내며 무리해서 타다가 일이 터졌다. 부정맥이 또 나타난 것이다. 엄마에게 말을 했다. 한참 혼이 나면서 병원에 갔다.

"뭐 하다 그랬어!?"

"자전거 타다가요”

"자전거 앞으로 절대 타지마!”

주치의 선생님 명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보조바퀴가 달린 내 자전거는 두발 자전거가 되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현관문 밖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 구석에 먼지가 뿌옇게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가 되면 다 나아서 탈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자전거는 그 날 이후로 한번도 타지 못했다. 내 키가 자라고 더는 작은 자전거는 탈 수 없어진 나이에 자전거를 버렸다.

운동에는 연이 없는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은 뛰지 마라 걸어 다녀라 가만히 있어라였다. 체육 시간에도 교실에 남아 책을 보거나 운동장 구석에 있었기에 주로 반 친구들의 작은 소지품이나 돈을 맡아두는 존재였다. 시술 후 부정맥은 잠잠했고 신나게 대학 캠퍼스를 걸어 다니다가 너무 많이 걸어 다녀서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그때 당시 편두통 약을 먹고 있어서 살이 찐 상태였는데 발 때문에 병원에서는 걷지 말라는 처방이 떨어졌으니 운동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사진 속 내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건 안 된다. 이 상태로는 못 산다 싶었다.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가 집 앞에 있는 요가원 생각이 났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제가 발이 좋지 않아서 무리한 운동을 못하는데 요가를 해도 될까요?”

“앉아서 하거나 누워서 코어를 기르는 운동을 하면 가능할 거예요”

“그럼 오늘 바로 상담 후 등록하러 갈게요”

그렇게 요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4층 건물에 3층에 있는 요가원은 4층에 사는 건물 주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건물주인 원장님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손수 편백나무를 둘러서 요가원 벽 일부를 꾸며놓고 직접 만든 한지등을 달아서 은은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은 나를 단번에 요가 세계로 이끌었다.


지금은 사라진 요가원의 모습


항상 운동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여러 운동을 시도할 생각만 했지 마땅히 내 몸 상태에 맞추어 운동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누워서 살살 하는 운동을 배울 수 있다니 바로 여기다 싶었다.

상담하러 가서 내 몸 상태를 이야기했다. "나는 다이어트 목적보다는 재활이 목적이다. 무리하거나 욕심부릴 생각이 없고 효과가 있다면 꾸준히 배울 생각이니 조급해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내 말에 동의하면서 내 상태에 맞추어 하나씩 요가 동작을 알려주었다. 나는 항상 요가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쯤 가서 몸을 서서히 풀었다. 훔쳐 가도 상관없다며 비밀번호와 열쇠 위치를 알려주셨다. 그럼 나는 아무도 오지 않은 요가원에 먼저 가서 불을 켜놓고 원장님이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든 기구들을 사용해서 등 근육, 발목, 허리를 부드럽게 돌려 이완시키면 몸을 풀었다.

요가 수업까지 들으면 하루에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운동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6개월을 꾸준히 요가를 했다. 6개월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4년을 했다. 친구들에게 저녁에 전화가 오면 “뭐 해?” 라고 묻는다. 나는 "요가 가는 중 혹은 요가원 옴 혹은 요가 중이니 이따 할게" 라고 대답했더니 하루는 친구가 “너 김종국이냐?” 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김종국은 운동을 잘 하잖아 몸도 좋고 그런데 나는 아니야 내가 가장 잘하는 자세는 사바아사나라고 요가 끝나고 맨 마지막에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누워서 푹 쉬는 것"이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왜 요가를 하는 것이냐? 무엇이 좋아서 살도 별로 빠지지 않는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는 것이냐?" 묻는다. 그럼 나는 마치 요가원 원장이 학원생을 유치하려는 열정을 보이듯 요가의 장점을 설명한다. 그렇게 주변 친구들이 나와는 다른 요가원이지만 결국 요가의 세계로 입문하게 했고 모두 가끔 만나면 이런 동작을 배운다, 이게 좋은 자세다면서 묘기를 부리고 시범을 보인다. “나 다리 이렇게 올라간다~ 팔 이렇게 보낸다~” 하면서 자랑한다.

요가원에 가면 다양한 회원님들이 모인다. 내가 다닌 요가원은 동네에 있는 곳이라서 다이어트를 하려는 젊은 여성회원들 혹은 에너지가 넘치는 중년 여성분들은 오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강하게 어필하는 단어로 된 날씬한 OO 혹은 체인 브랜드가 앞에 붙은 OO 요가가 아니었다. 모두 나와 비슷하게 운동이 어려운 몸 어디 한 쪽이 아파서 재활이나 간단한 운동을 해서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는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모두 요가를 할 때 한명은 드러 누워있고(나다) 한 명은 엎드려 있고(허리 디스크 회원님) 한 명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을 찾고(오 주여!) 한 명은 그 자세 못한다고 다리를 뻗고 있다거나 주무시는 것 같아 깨우면 명상하고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거나 오늘은 왜 안 오셨냐 하면 빈혈이 심하여 못 왔다거나 암 재발했는지 정기검진을 갔다거나 하는 회원님들로 구성되었다.

회원들끼리 사이가 좋아서 송년회를 했었다. 음식은 원장님이 모두 손수 만드셨다.


그렇게 소리 없는 아우성과 마음만 힘찬 요가 동작을 하고 나면 모두 지친 얼굴과 뿌듯한 얼굴을 동시에 띄고 요가원 문을 나선다. 요가보단 근황 토크가 더 많고 요가원이 아니라 이곳은 사랑방이냐고 웃으며 말한다. 모두 여자 회원님들이고 내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라 막내인 내가 가장 못하고 있으면 시니어인 본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고 나를 귀여워하셨다. 내가 가끔 시험 기간이나 과제 때문에 안 오면 “막내인데 시니어인 우리 요가원 마스코트는 어딜 간 것이냐? 왜 안 왔냐?” 물어보신다. 가장 활발하고 가장 목소리가 큰 회원님은 오랜만에 오시면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나를 보면 “오랜만이야!” 하고 들어오셔서 다른 회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나와 같이 심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그러려니 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여러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하루는 어떤 회원님이 몸이 안 좋다고 호소하길래 들어보니 부정맥 같아서 내가 시술한 병원에 나를 시술한 교수님에게 가서 부정맥 시술도 받게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곳에 요가를 하러 가는 것인지 환우회 회원님들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대충 하는 동작도 긴 시간이 쌓이니 내 코어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고 발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다른 근육의 힘으로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요가원이 코로나 상황과 원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고 내 요가 생활은 막을 내렸다. 가끔 요가원에서 친해진 회원님과 만나서 요가 대신 천변을 산책하거나 동네 마실을 다니며 그때가 좋았지를 시작한다. 요즘은 크로스 핏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하다가 정강이를 다치고 폴 댄스를 배우다 다리에 온통 멍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하지 마라 요가 해라 몸 다치면 골병든다” 말리며 운동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집에서 혼자 배운 요가 동작을 하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곤 한다. 내가 꼼수를 부리면서 폼 롤러를 굴리고 있으면 요가 선생님이 보시고 “요 녀석 재주가 늘었구나 누워서 그렇게 하다니!” 하던 말이 생각난다. 잘 안 되는 동작은 여전히 안 되고 잘 되는 동작은 여전히 잘 되는 것 그런데 너무 아팠던 동작이 꾸준히 하니까 전혀 아프지 않고 시원해진 것을 보면 뿌듯해진다. 일이 많아 피곤한 날 잠 잘 시간도 빠듯해서 운동하지 않은 날이면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급하게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요가를 하러 가던 때가 그립다. 운동이 끝나고 더우면 요가원 바로 앞에 있는 슈퍼에서 요가 선생님과 같이 요구르트를 사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내가 요가 선생인 것을 슈퍼 아주머니께 들키면 안 된다”하고 깔깔거리며 웃던 코로나 이전의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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