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지옥
힘든 일들이 썰물처럼 밀려와도 언젠가는 다시 밀물이 되어 사라질 일이라 생각하고 일상을 굳건히 지켜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아파서 병원생활을 많이 해도, 내가 오랫동안 나아지지 않고 계속 아파도 엄마는 자식과 살림을 내팽개치지 않았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엄마만이 지켜낼 수 있는 일상을 지켜냈다. 엄마는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언제나 외식을 줄이고 손수 매 끼니를 요리하셨다. 조미료도 쓰지 않고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 가족들이 먹는 음식 하나하나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그중 엄마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한 해 식탁을 책임질 김치를 담는 일이었다. 엄마는 손이 크다 문자 그대로 정말 손 크기가 크고 동시에 음식을 하는 양이 많아서 손이 크다 한다.
엄마 손이 커진 데에는 아빠와 오빠들의 먹성이 한 몫했다. 한참 아빠도 많이 먹고(지금도 많이 드신다) 오빠들 둘이 커나갈 때 엄마가 소나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뒤꼍에 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많이 먹던 시절. 우리 집 한 해 김장 양은 300포기였다. 말로는 감이 안 올 것이다. 식당을 하는 것도 아니고 5인 가정집에서 이 정도 양의 김장을 하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김장 지옥의 서막은 이렇다. 한 해 배추 농사를 아주 풍신 나게 지었다는 엄마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아빠가 취미 삼아 심은 배추들은 모양이 아주 개성 있게 생겼다. 너무 크거나 속이 차지 않았거나 어떤 것은 속이 너무 꽉 찬 배추들이 밭에서 흙이 묻은 상태로 집으로 배달된다. 아빠가 농작물을 심는 해에는 그 작물이 풍년이라 값이 너무 싸서 사 먹는 게 이익이고 다음 해에 안 심으면 심지 않은 그 작물만 흉년이라 값이 아주 비싼 현상 때문에 20년 가까이 농사 취미를 가진 아빠가 수확할 시기에는 엄마의 구박을 피해 갈 수 없다. 300포기의 배추를 부부가 집 안으로 나르면서 나르는 내내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이어진다. 다 나른 배추는 거실과 안방 입구까지 점령해서 산처럼 쌓여있다.
나는 이걸 배추 지옥이라 부른다. 씻어서 간을 해야 하는 2차 지옥이 열린다. 엄마는 혼자서 그 많은 양의 배추를 간한다. 간이라는 것이 너무 많이 하면 배추의 맛있는 물이 다 빠지고 너무 조금 하면 배추가 다시 살아나서 밭에 갈 것 같은 상태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노련한 엄마만이 그 많은 양의 배추를 소금을 적게 쓰고도 간 할 수 있다. 내가 어릴 땐 작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 식구와 배추가 들어가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래서 김장을 돕는다는 사람들도 집으로 불러 일하기 어려웠기에 그 많은 김장을 거의 엄마 혼자 다 하셨다. 가끔 일 끝나고 오신 큰아빠가 채칼로 가지런히 무와 당근 같은 재료를 썰어주고 가셨다. 둘째 동생이 만든 배추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제수씨를 도우러 오신 것이다. 엄청난 양의 양파와 마늘 사이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괴로워하는 나는 너무 어려서 김장 일손으로는 부적합했다. 옆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으면서 투덜거렸다. “나는 김치 안 먹는데 왜 이렇게 많이 담아야 해? 안 먹어 김장하지 마~”
세월이 흘러 300포기에서 100포기로 김장 양이 확 줄었다. 이땐 내가 커서 일손으로 조금 적합한 시기였다. 엄마는 주방일을 나에게 시키는 사람이 아니지만 엄마 혼자 배추와 사투를 벌이는데 방에 혼자 들어가서 따뜻한 보일러를 즐기며 쉬고 있기가 미안해 엄마 곁을 서성인다. 그럼 나는 김장에 쓰는 모든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갈기 시작한다. 청각, 양파, 마늘, 생강, 젓갈, 사과, 배 등등 종류별로 갈아서 줄 세워 담아두면 2차로 재료 준비를 돕는다. 미나리, 대파, 쪽파, 무 등을 새끼손가락 길이로 잘라둔다. 자르면서 엄마는 오빠를 부른다. “야!!!!! 나와서 안 돕냐!!!!!!!” 그럼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담냐며 해마다 김치는 제일 잘 먹는 오빠가 나온다. 채칼로 무랑 고구마를 겨우 한 채반 썰어놓고 다시 들어간다. 포기한다.
재료 준비와 배추 간이 끝나고 씻어서 물기를 빼고 나면 드디어 양념을 바를 차례다. 이제 빨간 양념 지옥이 시작된다. 고무장갑을 끼고 큰 김장용 매트를 거실 바닥에 깔고 양념을 배추에 꼼꼼하게 바르는 작업을 한다. 발라도 발라도 양념과 배추 산은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엄마 허리,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을 무렵 김장은 끝난다. 김장을 마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걱정이 없어 난 일 년 살이 준비를 끝마쳤어!, 부자가 된 기분이야!"
엄마가 지키고 싶은 일상의 목표를 완수한 순간 터져 나온 스스로에게 보내는 감탄사였다.
300포기를 담던 시절은 항아리 여러 개를 사서 땅에 묻어 김치를 보관했는데 100포기 시절은 김치냉장고 2대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일반 냉장고 2대까지 합치면 냉장고만 4대인 우리 집에 완성된 김장 김치가 가득 찬다. 다음날 서울에 사는 김치와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만 먹는 둘째 오빠에게 김치를 부치고 나면 엄마의 한해 준비와 겨울나기는 끝이 난다.
이제는 100포기에서 80포기로 다시 50포기로 줄어들었다. 해마다 엄마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김장이 끝나고 나면 "내년에는 김장 절대 안 해!" 하면서 가을 즈음 김장용 고추가 나타나서 거실에서 매운 냄새를 풍기면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나는 그 고추를 못마땅하게 쿡쿡 찔러대면서 말한다. "올해는 김장 안 한다며?" 그럼 엄마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생김치는 먹어야지 조금만 할 거야 조금만" 그럼 나는 더더욱 못마땅해하며 말한다. "이 고추 양이 조금 할 양이 아닌데 적어도 80포기는 너끈히 할 양인데" "아냐 50포기만 할 거야" 그러나 결국 내 말대로 80포기의 배추가 들어와 있고 엄마는 "50포기만 뽑아온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 80포기가 되었네" 하신다. 그럼 나는 "내년에는 30포기만 한다는 결심을 해, 그럼 결국 50포기를 하게 될 거야"라고 한다.
작년에는 매주 내려가던 본가에 한 주 안 내려갔다. 이유는 엄마가 그 주 내내 전화로 춥고 피곤하니 이번 주는 쉬어라 쉬어라 해서 마침 일도 많고 힘들어서 내려가지 않았는데 엄마의 숨은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평일 김장 재료들을 준비하고 주말인 토요일 내가 안 내려온다는 것을 확답받고 김장을 하신 것이다. 올해는 안 할 거야 라는 그 올해가 언제일지 모르는 해로 어김없이 매해 김장을 하셨다. 오빠들도 모르게 하려다 빵을 가져다준다고 온 큰오빠 부부에게 김장하는 모습을 들켰다고 했다. 새언니는 시집온 첫해에 의도치 않게 김장을 했고 맛있다며 박스에 김장 비닐을 넣은 채 한가득 김치를 싣고 갔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안 시키려고 비밀로 했는데 일꾼들이 제 발로 찾아왔어.... 다른 때는 전화도 하고 오는데 오늘은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어... 근데 일꾼 겸 김치 도둑이야 내 김치 다 가져갔어...." 전화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몰래 김장하려고 일주일 내내 못 오게 했다고 하니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김장 지옥을 탈출했다는 것을 체감했지만 엄마의 일상은 여전히 굳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