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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수능날 심장이 멎는다면?

by 임혜영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심장 부정맥은 만성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뛰던 부정맥이 일주일에 다섯 번 종일 뛰면서 빈도나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대학이며 성적이며 하는 이야기는 내게 점점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공부는 첫째가 아니었다. 건강이 우선이었고 그다음이 무사 졸업이었다. 나는 대학 입학보단 고등학교 졸업장을 바라보며 고3이 되었다.

고3, 만으로 17살이던 수능 날. 공부했든 안 했든 이날만은 내 심장이 요동치지 않았으면 했던 날 아침 7시였다. 시험장 근처에서 내려서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기 위해 휙 팔을 돌리는 순간 부정맥이 나타났다. 긴장해서 두근거리는 것과 다른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학교에 들어갔다. 주차를 하고 엄마가 내 곁에 왔다. 내 얼굴색이 변한 것을 엄마가 알아차렸다. 우리끼리의 암호 “또 뛰냐?” “응 갔어”

큰 호들갑을 떨거나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신기하게 시험 감독으로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들어왔다. 휴대폰을 걷어가기 전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 뛰는데 시험 감독으로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응, 문 앞에 서있으면서 봤어 키가 크시니 눈에 띄었어, 지금은 괜찮아졌어?"

"아니, 괜찮아지겠지"


1교시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너 괜찮냐?”

안 괜찮다고 하면 시험 그만 보고 병원 가라고 할까 봐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시험지보다 더 허옇게 질려서 말이 없으니 선생님은 "안 괜찮네, 힘들면 말해라”하고 가셨다.


사람은 간사하다. 시험장에 오는 동안에는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는데, 시험을 보는 내내 무사히 살아나가게 해 달라고만 기도했다. 그냥 이 시험을 무사히만 치르고 나가면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시험을 보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는 대신 다른 누군가 쓰러져 구급차가 오고 의료진이 뛰어들어왔다. 엄마는 담장을 넘어가는 의료진을 보고 내가 쓰러진 줄 알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난 살아서 걸어 나왔다. 문 앞에서 만난 엄마는 나만큼 하얗게 얼굴색이 변해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어도 수능 날부터 수능 다음 날 새벽까지 부정맥이 안 멈췄다. 병원에 가기도 싫었다. 부정맥이 발생한 지 22시간째 되는 새벽 5시, 드디어 심장이 돌아왔다.

병원에 가지 않고 견디며 생각했다. 망했다. 내 인생은 이걸 없애지 않으면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다. 성인으로 넘어가는 첫 시작은 수능 점수로 판단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런 중요한 시작을 부정맥 때문에 시원하게 망쳤으니 더 갈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나는 시술을 시도하고 망치느냐 시술하지 않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망치느냐 결정을 해야 했다. 온 국민이 염원하고 비행기마저 비행을 멈추고 대기하는 수능 날 부정맥이 나타나니 생각이 명확해졌다.


죽든 살든 해야겠다. 더 망가질 것도 없다. 무엇을 해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능 다음날 시술할 병원과 의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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