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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도 두근거리는데 나도 부정맥이야?

심장 부정맥

by 임혜영

15년 동안 동거 동락한 부정맥과 작별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능날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뛴 부정맥 때문이었다. 시술 성공에 확신이 없던 난 확신보다는 더 이상 물러 설 곳 없는 절박한 심정에 빠져 이 지옥을 어떤 식으로든 끝내고 싶었다. 난 이틀간 인터넷으로 시술할 병원과 의사를 알아보았다. 결정을 했기에 선택은 빨랐다. 인터넷에 나온 예약 번호를 보고 전화로 진료일을 예약했다.


난 그동안의 진료기록과 검사기록을 들고 상경했다. 일면식도 없는 의사에게 그렇게 고심하며 미뤄온 시술을 받겠다고 갔다. 의사는 내 심전도 기록을 본 지 일초만에 "심실빈맥이네~"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됐다"를 외쳤다. 내 심전도를 보고 단번에 병명을 맞추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 나이가 어리니까 다른 부정맥으로 추측하곤 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에서 난 내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방에서 계속 진료를 받아왔는데 거기에서 시술하지 왜 왔어?"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긴 설명이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할 대답이었다.

"그냥요"라는 짧은 대답만 했다. 그때 엄마가 옆에서 내 대신 대답했다.

"그러게요 교수님 얘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더니 교수님에게 시술받겠다고 해서 이렇게 왔어요"

교수님이 그 대답에 살짝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은 다 믿으면 안 돼 반만 믿어야 돼 알았지?"

나 역시 인터넷을 믿지 않는다. 내가 본 것은 어느 병원에 어느 정도 규모의 전문의 인력이 구성되어있는지를 알아본 것이었다. 누가 실력이 있네 누가 명의네 하는 것 따위는 애초에 다 믿지 않으니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가치관과 일치하는 의사의 대답을 들었을 때, 믿고 치료를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그냥 근거 없는 내 촉이었다. 이 의사면 차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시술 당일 아침, 떨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내 시술 동의서에 내가 사인을 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 결정은 곧 내 책임이라는 마음이었다. 이제 이 시술을 하고 나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정맥으로부터 졸업이라고!


부정맥은 심장에서 전기적인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하는 질환으로 내 부정맥은 심실에서 전기 흐름에 문제가 생겨 비정상적으로 심장이 빨리 뛰는 심실빈맥이었다. 시술받기 일주일 전 15년간 먹어온 심장 부정맥 약을 끊어야 했다. 시술할 때 부정맥이 유발되지 않으면 시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용하던 약물을 끊고 부정맥 증상이 잘 유발되는 조건을 만든다. 나는 진통제와 마취제 그리고 수면제에도 심장 박동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3가지 약물 없이 시술을 진행했다. 부정맥 시술 성공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만들었다. 부정맥이 잘 일어나서 원인 부위를 정확히 찾아 제거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술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마취를 하지 않아 무척 고통스러웠다. 시술 과정은 고통에 비해 간단하다. 심장은 전선이 아주 복잡하게 설계된 기계와 같다. 그래서 부정맥은 전극도자로 유발할 수 있다. 전극도자로 유발된 부정맥 원인 부위를 찾으면 70-100도의 라디오 고주파로 원인 부위인 심장 내 조직을 절제한다. 나는 38번의 소작으로 부정맥이 제거되었고 시술은 끝났다.


시술을 마치고 지혈을 위해 열두 시간 가까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지난날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어릴 때 병원에 입원해있던 당시에 의대생이거나 혹은 인턴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우리 교수님 얼굴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그럼 나도 부정맥인가? 부정맥이 대체 뭐람? 그냥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면 부정맥 아니야?”


심장에서 온 고통과 질병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온 마음의 고통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내 모습을 생각했다. 마음의 고통의 절반은 질병을 모르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말 때문이었다. 부정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위와 같은 질문. 정신질환과 부정맥은 구분하기 어렵다. 특히 공황장애나 불안증은 심장 부정맥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 혼동하기 쉽다.


이런 혼동은 내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지인들만 보아도 한 사람은 화병에 걸렸는데 부정맥에 걸린 줄 알고 심장내과에 다녔고 다른 한 사람은 불안증과 갱년기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정맥이었다. 일반인들이 의학 지식에 접근하기 쉬워진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부정맥과 정신질환은 자주 혼동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났던 의사가 ‘교수님을 봐서 두려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인지 ‘부정맥으로 심장이 빨라진 것’인지 평생 단 한 번도 부정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검사를 하지 않고 알 수 없다. 이런 혼동 속에서 난 정신질환을 가진 나약하고 의지가 약해서 부모가 끼고도는 아이로 오해받아 정말 많은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난 이제 시술에 성공하고 이런 오해의 말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시술이 끝나고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큰 해방감을 느꼈다. 난 부정맥이란 족쇄와 꼬리표를 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내 모습 그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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