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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 심장의 문

심장판막질환

by 임혜영

부정맥 시술 2년 후 검진을 받으러 갔다. 절제 부위가 많아 회복이 더딘 상태였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과연 이 상태가 온전한 것인지 알기 위해 전체적인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아주 미세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부정맥 시술을 받고 나면 심장병 환자 타이틀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죽기 전까지 가져가야 할 꼬리표를 떼기 위해 노력한 순간이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다. 풀린 줄 알았던 심장에 채워진 족쇄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내 심장의 어느 한 판막에서 역류가 발생했다는 결과를 들었다. 앞으로의 주의사항을 듣고 퇴원했다. 현재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갑자기 판막에 이상이 생기는 이유는 많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시술하다가 도자에 심장 내 작고 얇은 건삭이 건드려져 늘어났거나 끊어졌거나 혹은 그냥 살다가 심장의 조직이 변했거나 신만이 알 수 있는 이유였다. 어쨌거나 판막에서 역류가 심각하게 진행되면 수술을 받는것이 정해진 미래였다. 시기도 알 수 없다. 관리하기 나름이었다. 이때부터 내 인생의 매 순간에 어떤 관리를 해서 수술을 피하거나 최대한 미룰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믿기지 않는 검진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부정맥은 잡았는데 판막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진인가?” 나는 다른 병원에 갔다. 같은 검사를 받았고 똑같은 결과를 들었다. 내가 또 다른 심장 문제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판막 질환에 관한 각종 자료를 찾아보았다.


심장은 종종 마음으로 표현된다. 마음은 또한 여러 가지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사물에 빗대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숨기면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표현한다. 우리 안에서 매 순간 뛰면서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심장도 문이 있다. 심장의 문은 판막이다. 감정이 들어가고 나가는 문이 아니고 혈액이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문이다. 심장의 문은 손잡이가 없다. 대신 혈액이 들어올 때 열리고 나갈 때 닫힌다. 자동문 같은 것이다. 심장 판막은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심장에서 쉴 틈 없이 열고 닫힌다. 그러다 보면 판막이 잘 닫히지 않거나(폐쇄부전증), 판막이 잘 열리지 않는(협착증) 판막 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데, 난 폐쇄부전증에 걸린 것이었다.


판막질환이 심해지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부정맥 시술을 받은 후 그 과정과 회복 기간 중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싫다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가슴뼈를 열고 심장을 멈춘 뒤 수술하는 과정은 공포로 다가왔다. 최대한 미루고 싶고 가능하다면 안 하고 싶은 수술 시기는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날 언젠가였다. 수술 과정을 자세하게 알면 무서움이 줄어들 것 같아서 또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았다.


수술에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개흉 수술이 있었다. 판막이 완전히 망가져서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가슴 정중앙에 있는 흉골을 절단하고 심장이 보이도록 만든 다음 판막을 교체하는 방법이다. 가슴 한가운데 큰 흉이 남는다는 것이 꺼림칙한 방법인데 요즘은 기계의 발달로 다른 수술법도 생겼다. 갈비뼈 사이 반 뼘 정도의 부위만 절개한 후 다빈치나 이솝 로봇으로 최소 침습 수술을 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무서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수술로 판막을 교체한다면 판막 종류를 내가 선택해야 하는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소 소재로 만든 기계 판막을 선택하면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 혈전용해제를 복용해야 하고 약이 잘 조절되는지 매달 검사를 받고 식단관리를 하며 살아야 한다. 또 다른 판막은 돼지 판막이나 소의 심장을 이용해서 만든 조직 판막인데, 조직 판막은 평생 혈전용해제를 먹는 불편함은 없지만 판막의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10년에서 15년 후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진료 대기 중 병원에서 전시한 심장 판막을 보았다

이 모든 선택이 싫은데 그나마 솔깃한 방법이 개발되었다. 판막 교체가 아닌 자신의 판막을 재건해서 사용하는 판막 성형술이다. 이 방법으로 수술하면 혈전용해제도 평생 먹지 않아도 되고 조직판막 재교체 수술도 필요 없다. 가장 받고 싶은 치료는 작은 클립으로 닫히지 않는 판막 문을 살짝 집어놓는 시술인데 모든 판막질환 환자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고령 환자에게 동반 질환이 많아서 가슴을 열고 하는 수술이 위험한 경우에만 시행할 수 있다.


이런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발생한다. 그 이유로는 노화, 성별, 나이, 질병의 진행 상태 등 때문이다. 나이가 많으면 수술보다는 시술을, 판막이 심하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성형 수술을 할 수 있다. 젊어도 판막이 많이 망가졌다면 오래 쓸 판막으로 치환을, 가임기 여성이라면 약을 먹지 않는 조직판막으로 교체하는 방법을 고려한다. 그 외에도 회복 기간 때문에 개흉술을 할지 최소 침습 술을 할지 현실적으로 수술비는 어떤 것이 저렴한지 고민하기도 한다. 머릿속이 혼돈으로 복잡해지는 순간이다.


과학의 발전은 내게 짧고 고통스러운 유한한 삶을 고통을 줄이고 조금 무한한 듯 길게 살아있는 시간을 늘려주었다. 여러 방법이 있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임에도 나는 아직 미래의 선택이 두렵다. 판막증이 악화되어 다시 부정맥이 유발될 수 있는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하고 치과 치료 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고용량의 항생제를 미리 복용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심장 건강에 좋지 않을 요인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정기적으로 심장의 기능과 병의 진행 상황을 살피고 있다.


과학의 발전 속도는 빠르게 우리 삶을 추격해온다. 앞으로는 과학의 발전이 현재 겪는 고통을 줄여주는 삶은 일상이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행위에 근거를 마련해 주는 데는 과학이 있었다. 내가 가진 유한한 삶, 건강, 젊음, 시간을 언제까지 연장시킬 것인지 과학적인 사고와 인문학적인 가치관으로 경계 지어야 한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의미 있는 행위인지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답이 있기에 어느 것 하나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20년 후 혹은 조금 더 가까운 10년 후 나는 과학적인 근거가 명확하게 뒷받침되어있고 내가 받는 피해는 최소화가 될 수 있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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