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인턴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병원에 헬기가 떴다. 내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이미 쓸 수 있는 약도 다 썼다. 모두가 잠든 밤, 병원 옥상에 뜬 헬기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착륙을 못하고 되돌아갔다. 나는 의료헬기를 대신해서 구급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차 안에서 들리던 시끄러운 빗소리에 살짝 잠에서 깼다.
엄마에게 물었다. "어디가?"
엄마는 말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도착하면 말해줄게 눈 감고 자고 있어"
빗소리는 너무 크게 울려 무섭고 엄마는 또 한바탕 울어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있는 상황을 보아하니 눈을 감고 조용히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왜 서울에 가냐고 더 캐묻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도착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었다. 내 옆자리 침대 위에는 5살인 내 키만 하거나 나보다 더 작은 애들이 누워있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온갖 기계에 연결된 애들만 있었다. 조용한 중환자실에 들리는 소리는 삐삐 거리는 기계음과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는 의료진들의 말소리만 들렸다. 병원에서 항상 내 곁에 있던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무서웠다. 처음 온 병원이라 아는 얼굴의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도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그곳에서 크게 말하기도 조심스러운 그 공간에 나 혼자 있었다. 무척 지루하고 괴로운 중환자실에서는 하루 딱 한번 엄마와 면회가 가능했다. 엄마가 오면 아프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대신해서 심심해, 엄마 보고 싶어 라는 말만 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집에 안 보내줄 것 같아서 심심하다 말했는데 내가 정말 심심한 걸로 생각한 엄마가 병원 안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기공룡 둘리"를 빌려왔다. 내 침대 옆에 달린 작은 개인용 TV로 비디오 시청이 가능했다. 난 그때 아기공룡 둘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화라는 것을 알았다.
둘리가 엄마 찾아 서럽게 우는 장면을 보고 엄마와 떨어져 중환자실에 혼자 있는 내 처지를 감정 이입해서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내 생각에 나는 안 아픈 것 같은데 집도 못 가고 엄마도 하루에 한 번만 잠시 보여주는 이곳에서 종일 둘리가 "엄마~"하며 울어대기만 했다.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나가자~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하면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였다. 침대 구석에 머리를 푹 처박고 둘리 보다가 울고 있는 5살 꼬마가 아파서 우는지 알고 놀란 눈을 한 간호사가 와서 내게 물었다. "어디가 제일 아프니?!" 그럼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언제 와요?"
폭풍우를 뚫고 실려간 병원 중환자실에서 엄마 찾으며 울다 살아 나간 꼬마는 커서 연구 인턴이 되어 같은 병원 심장내과 연구실에 걸어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내 꿈은 심장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겪었던 부정맥을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장 판막질환을 수술 없이 약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연구를 하려는 의미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멘토에게 연구 인턴 모집 공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무작정 연구 인턴쉽 지원서를 썼다. 기대하지 않으면 때론 결과가 좋은 법, 2018년 여름 심장내과 연구 인턴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인턴으로 있는 기간 동안 병원에서는 매일 닥터 헬기 소리가 들렸다. 연구실에서도 헬기 소리가 들렸고 퇴근길 머리 위로 지나가는 헬기를 매일같이 보았다. 그 해 여름은 40도 넘는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로 불지옥과 물지옥을 경험했다. 헬기 소리와 날씨는 내가 이 병원에 처음 온 날 비가 많이 오던 여름을 상기시켜주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 기억의 고통과 현재의 고통이 합쳐져 미래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내 결심을 잊지 않게 했다.
내가 지도받기를 희망한 교수님도 마침 나를 선택해서 나는 그간 동경해오던 교수님의 일대일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내게 왜 심장 연구가 하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셨다. 나는 내 병력을 간단히 말씀드린 후 그래서 심장 판막 질환을 수술없이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 말에 동의하시고 덧붙여 심장 초음파실 참관을 시켜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식과 지성이 흘러넘쳐 감탄이 절로 나는 교수님 밑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다. 나는 매일 두 시간 쪽잠으로 버티며 논문을 읽고 공부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연구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싶었다. 내 젊은 날의 시간과 연구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죽음이 헛되게 쓰일 수 없었다.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질문하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가 연구할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고 생각했다. 심장 상태가 악화되면 열정을 쏟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 열정도 이미 악화되고 나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내 조급함은 결국 독이 되었다. 연구 인턴 기간이 끝나고 늦여름이 시작될 무렵,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굉음이 들렸다. 귀가 먹먹해지고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눈앞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내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아가려는 그 순간 메니에르라는 생전 처음 듣는 병이 내 앞을 막았다. 꿈은 접어두어야 했다. 현실은 공부나 연구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외쳤다. 나는 부정맥 시술 후 판막 질환을 판정받았을 때와 같은 절망을 또 한 번 느꼈다. 비상사태였다. 그다음은 포기인가 잠시 멈춤인가? 빨리 결정해야 했다. 난 잠시 머릿속 스위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