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니에르
고흐는 천재였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그의 작품이 인정받은 불행한 천재였다. 그의 삶이 애달파서 이 세상 사람도 아니지만 무한한 응원과 지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하던데 나는 닮고 싶은 그의 능력은 닮지 않고 엉뚱한 것에서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짧은 심장내과 연구 인턴 생활을 마치고 고향 본가로 내려온 날이었다. 아픈 딸을 보고 우는 엄마를 위해 시작한 공부였다. 내 한 몸 잘 건사해서 그만 울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이 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여전히 아픈 딸이 타지에 홀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 걱정된 엄마는 인턴으로 가 있는 기간 동안 내가 그리워서 많이 울었다. 나는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도록 내가 수술받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어 왔는데 엄마는 나를 못 봐서 울고 있었다. 언제나 인생의 모순과 고통은 함께 찾아온다.
집에 돌아온 딸이 반가워서 계속 말을 걸고 있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오자마자 내 방부터 들어가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귀에서 굉음이 들렸다. 방문을 열려다가 멈칫하고 서서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굉음에 적응하려고 잠시 서 있다가 방에 들어가니 내 방 벽과 책장이 내게 쏟아져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공간이 낯설어졌나 아니면 멀미한 것인가 하고 방에서 나와 씻기 위해 욕실에 갔다. 이번에는 욕실 천장이 내 머리 위로 바로 떨어져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 화장실이 이렇게 작았나? 그 순간 무척 어지러웠다. 이렇게 몽롱한 상태가 집에 오랜만에 와서 받는 낯선 기분 때문인지 여름 더위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차를 타고 와서 멀미를 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순간 식은땀이 나서 샤워를 간신히 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가 와서 신난 부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사다 놓았으니 과일을 먹을지 아니면 밥을 먹을지 물어보셨다. 내가 어지럽다고 말하면 그 들뜬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일단 잠시 낮잠을 자고 밥을 먹겠다 하고 침대에 누웠다.
윙 윙 윙 웅 웅 웅 삐------
누워있는 동안에도 귀에서 소리가 났다. 여름 더위를 막기 위해 틀어놓은 선풍기와 에어컨 소리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는 2주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논문을 보려고 앉아 있는데 무척 어지러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려고 하다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왼쪽 이어폰에서만 음악이 너무 작게 들렸다. 이어폰이 고장 났는지 확인하려 왼쪽 이어폰을 오른쪽 귀에 꽂아 넣었는데 잘 들렸다. 잠시 접촉 불량이었나 싶어 다시 왼쪽 이어폰을 왼쪽 귀에 대보았다. 잘 안 들렸다. 이번에는 이어폰 이상이 아니고 내 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지난 며칠간 증상이 있었는데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이상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었다.
그 길로 바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가서 증상을 이야기했다.
“잘 안 들리고 이상한 굉음이 들려요 어지럽고 귀 한쪽이 물에 잠긴 듯 멍멍하고 심하면 비행기 탈 때처럼 부풀어 오른 기분이 들어요”
의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랬나요?”
“대략 2주 되었어요”
“왜 빨리 오지 않았어요!”하고 혼이 아닌 혼이 났다.
검사를 했다. 어지러움을 유발한 다음 눈에 VR 체험할 때 쓰는 것 같은 기계를 쓰고 내 안구 운동을 기록하는 검사와 청력검사를 했다. 내가 말하는 증상과 검사 결과를 종합해서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을 진단받았다.
"메니에르"
병의 이름은 외국인의 이름을 따와서 이질적이었고 드물게 발병하는 병이라 병을 같이 앓고 있는 동지가 적다는 사실에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았고 어지러움과 귀의 불편함(이물감, 이명, 난청)이 생활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려서 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었다. 일단 좋아하는 음악소리도 소음이 되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한참 들여다보아야 글이 제대로 보였다. 무척 어지러웠으니 그 기분은 마치 드럼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세탁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장을 연구하러 타지에 가려는 계획은 잠정 연기였고 취소에 가까웠다.
희귀한데 난치성이라서 치료가 될지 장담은 못 하지만 치료를 해보자는 말에 일단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귀의 전정기관에 물이 차서 압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이뇨제, 혈액순환제 등이었다. 약효는 별로 없었다.
증상은 다양해서 온종일 나를 괴롭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참 치사한 병이었다. 걷다가 바닥이 융기하고 빙글빙글 돌아 쏟아질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넘어져서 이마를 다친다거나 말소리가 멀리서 바스락거리듯 불분명하게 들려서 온 신경을 소리에 집중하느라 빈번히 열이 났다. 어지러움은 편두통을 더욱 빈번하게 유발했고 난 부정맥을 겪을 때도 잘 찾아가지 않았던 병원을 내 발로 걸어 들어가 입원했다. 그러나 입원해서 진통제를 종일 맞고 있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퇴원을 위해 처방받았던 약은 비마약성 진통제보단 강하고 마약성 진통제의 사촌쯤 되는 준 마약성 진통제였다. 이 약을 먹고 부작용이 나서 기절하는 등 한바탕 소란도 겪었다.
이 병은 내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데 방해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병이든 일이든 처음 겪는 것은 당최 감당하는 법을 모르고 헤매기 마련이라서 나는 새로운 내 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질 수 없지 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이때의 시도가 어쩌면 지금 내 직장을 선택하는 하나의 작은 나비 날갯짓이 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