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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와의 사투

편두통과 메니에르

by 임혜영

메니에르 증상 때문에 매일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밤하늘처럼 빙글빙글 어지러운 생활을 이어갔다. 메니에르와 합작해서 나를 괴롭힌 또 다른 병이 있었다. 메니에르보다 오래된 고약한 이 놈의 정체는 바로 편두통이다.


고흐가 귀를 잘랐다면 나는 머리를 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프면 잘라서 호빵맨처럼 새머리로 갈아 끼우거나 아플 때만 잠시 떼어놓다가 다시 붙이고 싶었다. 이런 해괴한 생각을 할 만큼 나를 괴롭힌 편두통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서 교실 청소와 꾸미기에 한창이던 때였다. 깔끔한 성격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전 학년이 쓰던 책상의 낙서를 말끔히 지우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약국에서 아세톤 원액을 사 와서 닦아야 한다는 말에 따라 갈색 유리병으로 된 아세톤 원액을 준비해 갔다. 봄바람이 불던 날 교실과 복도 창문을 다 열어서 바람이 충분히 통하게 한 후 고무대야에 아세톤과 물을 희석해서 본격적으로 책상 위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아세톤 냄새가 독해서 힘들었지만 라떼는 학교 청소가 학생의 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별말 없이 낙서를 지웠다. 한참 아세톤 냄새를 맡으며 청소를 하다가 머리가 아파졌다. 도저히 그 공간에 있을 수 없어서 선생님께 말을 하고 내 할당량을 끝냈으니 냄새를 피해 다른 곳에 가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세톤 냄새가 나는 공간을 벗어나도 두통이 멈추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두통은 계속되었다.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눈앞에 까만 암점이 나타났다. 암점 때문에 시야의 절반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암점은 내 초점을 따라서 움직였다. 때론 빠른 속도로 깜빡이는 빛으로도 나타났다. 그 뒤에 이어진 두통은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 눈도 뜨기 어렵고 머리를 움직이기도 어려워서 다음날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 뒤로 그 이상한 편두통은 시험기간 혹은 날씨가 흐린 날 종종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눈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안과에 갔다. 안과 문제는 아니라며 편두통일 것 같다고 신경과에 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신경과에 가지 않았다. 신경과에 가면 진통제만 줄텐데 나는 부정맥 때문에 진통제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심장 상태에만 온통 신경을 쓰느라 두통은 방치해두었다. 부정맥을 고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심장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두통은 그저 부정맥으로 인한 부차적인 통증으로 생각했다. 부정맥을 없애고 나면 두통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부정맥 시술을 하고 나서 2년이 지나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진통제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싶어서 치료를 받기 위해 신경과에 갔다. 뇌파검사, 뇌 CT, 뇌 MRI를 찍어도 구조에 이상도 없고, 종양도 없고, 출혈도 없었다. 조짐 편두통이라고 진단받았다.


처음 받은 약은 이완된 뇌혈관을 수축시켜 편두통을 멈추게 하는 약이었다. 심장내과에서 약이 혈관 수축을 일으켜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약으로 바꾸어 처방했다. 그런데 약효가 전혀 없었다. 다음 진료 때 효과 없다고 말하니 이제 만성으로 되어 약이 듣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먹어서 편두통을 예방하는 약과 편두통이 시작되면 먹는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아왔다. 그렇게 편두통 치료를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갈 때마다 약을 바꿔왔다. 의사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고 내 상태를 잘 이해해주었지만 약이 맞지 않거나 효과가 없었다. 편두통을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서 약이 듣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는 아프면 언제든 참지 말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너무 오래 고통을 참았더니 강력한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의 빈도와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매일 먹는 약 부작용도 2차 고통을 주었다. 어떤 약은 손발이 저리게 하고 어떤 약은 살이 너무 빠지게 하거나 반대로 살이 막 쪘다. 어떤 약은 얼굴에 여드름을 어떤 약은 극심한 졸음이 가져왔다.


한참 놀고 공부하고 신나게 젊음을 즐길 나이에 나는 약에 취해서 겨우겨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겨우 겨우라고 했지만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긴 했다. 통증이나 약 기운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땐 모든 수업을 녹음 해와서 다시 들었다. 욕심을 부리면서 복수전공까지 신청해서 이 과 저 과로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수업을 들기 위해 걸어다닐 땐 강한 빛에 의해 편두통이 유발될 수 있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우여곡절의 대학생활을 마쳤다. 4년 동안 편두통을 컨트롤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진통제는 여전히 먹고 있었지만 매일 먹는 약은 안 먹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두통이 유발되는지 알게 되었다. 요령이 생겨서 이제 편두통과도 제법 친해졌을 무렵 메니에르가 찾아왔다.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한다. 나는 이 병들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대학원에서 기른 논문 보는 실력은 내 병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약을 써야 할지 파악하기 좋았다. 내가 그동안 먹어온 약과 증상의 정도 그리고 메니에르까지 더해진 상황은 준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고 치료제도 듣지 않았다. 시판되는 약을 다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나는 임상시험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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