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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117. 종속과목강문계


학창시절, 생물의 분류체계인 ‘종속과목강문계’를 열심히 외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왜 그걸 외워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것 역시 내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나’를 생물의 분류법에 따라 분류하면 황인종, 인간속, 오랑우탄이나 침팬지와 같은 사람과, 영장목, 척삭동물문, 동물계에 속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안에서 그것도 평택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생물분류법으로도 구분이 안 될 만큼 저 아래에 존재합니다.    

 

이웃집에 있는 요크셔테리어는 요크셔테리어종, 개속, 개과, 식육목, 포유강, 척삭동물문, 동물계로 분류됩니다. 나와는 젖을 먹고 자라는 포유강에서 만나지만 성질이 온순하고 주인을 잘 따르며 꼬리를 잘 흔드는 그 강아지는 종으로도 따질 수 없을 만큼 한참 아래에 존재합니다.     


러시안블루로 알려진 고양이를 살펴보면 러시안블루종, 고양이속, 고양이과, 식육목, 포유강, 척삭동물문, 동물계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러시안블루종만 해도 수백 수천의 고양이들이 있을 테고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나 호기심 많은 이웃집 고양이들까지 합치면 생물의 분류체계로는 따질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식물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생물의 분류범주를 따릅니다. 우리가 개별로 만나게 되는 식물들은 저마다 종이 있는데 예를 들어 ‘춘란’은 춘란종, 보춘화속, 난초과, 난초목, 외떡잎식물강, 속씨식물문, 식물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춘란뿐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가진 모든 식물들은 모두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큰 분류체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분류체계 중 가장 큰 범주인 ‘계’로만 따져도 ‘동물계’ ‘식물계’ ‘균류계’ ‘원생생물계’ ‘박테리아계’가 있으니 그 아래 범주야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동물계이든 식물계이든 생물의 분류체계로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집에서 흔히 보는 개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논두렁에 핀 작은 풀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름을 가진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나’의 존재와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파리’와도 같고 ‘하루살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냉이꽃’과도 같고 ‘나팔꽃’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물들 중에 나보다 낮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나’가 가장 잘났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달맞이꽃’이나 ‘질경이’ 또는 ‘강아지’나 ‘곤충’이나 ‘벌레’는 ‘나’라는 존재보다 아래에 있다고 착각합니다. 옆집 강아지 ‘발바리’나 차 밑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커다란 눈을 가진 ‘고양이’보다 내가 훨씬 위에 있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내 마음대로 그들을 해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훨씬 위에 존재하는 자연도 내 마음대로 훼손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조금 더 넓은 체계 안에서 ‘나’를 이해할 때 조금 더 정확히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라고 외쳤던 시인 김수영의 탄식은 어쩌면 이런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나오는 회한의 시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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