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118. 맛의 노마디즘

일요일 오후, 어머니가 차려준 소박한 한 끼 식사는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습니다. 특별한 조리나 양념이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가 차려준 밥과 반찬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감칠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년부터 오감으로 길들여진 ‘기억의 맛’입니다.    

 

어린 시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꾀를 부리던 이른 새벽부터 어머니는 어느새 부엌에서 도마 위에 무언가를 썰거나 두드리는 소리로 우리를 깨우곤 했습니다. 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음식냄새는 누워있는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편안하게 스며들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던 소박한 음식은 도마 위에서 무언가 다져지고 썰어지는 소리로, 맛있는 음식냄새로, 때론 간을 보라며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어주시던 양념장 묻은 어머니의 손맛으로, 상위에 차려진 맛깔난 음식으로,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맛으로 온 몸에 아로새겨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오감으로 새겨진 음식은 어른이 된 후에도 다시 한 번 먹고 싶은 기억의 맛으로 되새김질 됩니다.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지만 그것은 결코 어린 시절 먹었던 맛과 같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의 맛이 함께 포함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맛은 오랜 숙성기간을 거친 양념들로 만들어진 것,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만드는 음식이라는 풍요로움과 함께 눈으로 맛으로 기억되는 것이니까요.     


산해진미가 한상 가득 차려져 있어도 그것이 허기진 마음까지 채우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혀에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은 배를 불리는 역할은 하겠지만 음식으로 인해 채워지는 마음의 풍요까지 책임져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머니는 아무리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다닌다고 말해도 그런 음식들은 돌아서면 허깨비일 뿐이라며 어느새 금방 지은 밥을 다시 차려 제 앞에 내밀곤 하셨습니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음식을 해먹는 일이 점점 줄어 들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햄버거나 피자 같은 인스턴트만 먹고 자란 아이들은 음식으로부터 오는 유년의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채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유년의 기억이 담긴 음식을 갖지 못한 어른들은 그저 혀를 사로잡는 음식의 맛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유목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음식은 한 번에 입맛을 확 사로잡는 맛은 아니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던 어머니의 정성이고 손맛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음식은 단순히 후각과 미각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기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때론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오감으로 전해지는 음식을 떠올리지 못하고 맛을 찾아 떠도는 현대인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유년의 그곳으로 되돌아가게 해 줄 음식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전 17화 126. 사랑을 위한 과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