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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8. 2022

4. 결코 버려서는 안 될 것들

어느새 혹독한 겨울을 견딘 나무에 힘차게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얼마 후면 가지마다 예쁜 초록의 잎들이 탄생하겠지요. 꽃들은 앞 다퉈 몽우리를 맺고 비비추는 얼었던 땅을 뚫고 당당한 초록의 뿔을 우리 앞에 드러낼 겁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겨울옷 보다 화사하고 얇은 봄옷을 꺼내 입고 싶어질 때가 오면 흐드러지게 날리는 벚꽃 사이를 걷고 싶은 연인들의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지겠네요.          

아마 두해 전의 저라면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글 쓰는 친구와 함께 무작정 매화꽃을 보러 갔던 여행을 떠올리며 또 한 번 그런 기회가 왔으면 하는 기대에 행복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계절을 타는 저에게 봄은 어떤 계절보다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거든요.          

그러나 올해 다가오는 봄은 예전에 느끼던 그런 봄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아니 오히려 꽃이 피면 더 슬퍼질 것만 같아 오는 봄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온 세상에 찬란한 꽃이 피면 꽃 보다 더 예쁜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은 어린 영혼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도 4월 16일이면 꼭 1년입니다. 평온했던 아침이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던 그날, 사고를 당한 아이들 전부는 내 아이들이었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유독 이 사건만큼은 방금 불에 덴 상처처럼 아직도 날것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건 그만큼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느낌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 생각하니 어쩌면 우린 오랫동안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해마다 오는 봄을 슬픔 속에 맞이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듭니다.           

언젠가, 한국작가회의에서 팽목항으로 보내는 릴레이 편지를 쓰자는 제안이 있어 힘들게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무리 아프다 한들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아이가 처음 옹알이 했을 때와 처음 세상에 두 발을 딛고 걸었을 때, 유치원 가방을 메고 손 흔들던 때와 의젓하게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을 때를 낱낱이 기억하는 부모들의 마음까지야 감히 헤아릴 길이 없어 몇 번이나 펜을 내려놓아야 했지요.          

프랑스 철학자로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 했던 레비나스는 나와 관계없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한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아픔들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건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고통을 다른 말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동댕이쳐지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아픔들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진다면 우린, 그리고 나는 아마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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