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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8. 2022

10. 목격자

평택역에 세월호 분양소가 마련된 것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춰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지만 그날의 일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기에는 뭔가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모든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하고 그에 따른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 책임소재에 따른 처벌이 이뤄지고 난 후에야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사건에 대한 처벌과정을 보며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때론 교훈으로 삼아 자신의 내면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그 사건을 잊어갑니다. 그것이 비록 내가 연관되지 않았어도 사건을 보고, 그 사건을 인지하고, 망각하는 일반적인 과정이지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조금 다릅니다. 사건은 발생했고 수사는 진행되는 것 같은데 잘잘못은 명확히 가려지지도 않고 그에 따른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선체 인양 과정도 없어 아직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국민들을 향해 무조건 잊어야 한다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월호 사건이 일반 사건과 다른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는 사건이 벌어지던 날 TV화면을 통해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는 배의 일부분이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을 분명히 봤는데 구조를 머뭇거리는 사이 배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모든 국민이 목격한 것입니다. 우리가 목격한 그 순간 배 안에는 아직 살아 있는 아이들이 제발 살려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지요. 우리는 본의 아니게 꽃다운 십대의 아이들 300여명이 물속으로 생매장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이로 인해 그 사건은 목격자가 된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비극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살인사건과 마주한 목격자에게 범인을 찾기도 전에, 아니 범인을 찾을 생각이 없으니 사건을 그만 잊어버리라고 하는 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퍼런 바닷물만 보면, 봄이 온다고 들떠야 하는 4월만 되면 그날의 처참한 기억이 떠오를 텐데, 이 처참한 기억을 역사가 낱낱이 기록할 텐데, 그 수많은 목격자들에게 무조건 잊으라 하는 건 어딘지 어패가 있어 보입니다.           

사건이 벌어졌다면 낱낱이 밝히고, 책임소재도 밝혀 잘못이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의 약속이지요. 그런 사회적 약속을 잘 지키는 역할을 하라고 법도 있고 명예로운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경찰도 있는 것 아닌가요.           

대체 무엇을 잊으란 말인지, 아직 사건이 종결되지도 않았고, 물속에는 아직도 죽은 아이들이 남아있는데, 우리가 바로 그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제대로 구해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을 똑똑히 보았던 목격자인데 눈감고, 귀 막고,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잊을 수 있나요? 잊혀 지나요? 내 아이가 아니라고 당신은 그렇게 그냥, 잊을 수 있나요? 살아있는 당신과 나의 아이들에게 눈감고 귀 막고 살라고 가르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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