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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34. 어른이 된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나이니 그렇게 들어가는 나이로 행세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숫자로 헤아리는 나이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나이든 분을 대우해야 한다면 그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만큼 그분의 몸 속에 체화된 삶의 이치들을 젊은이들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녹아난 그분의 연륜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어른의 시간 속에도 나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젊은 시절 세상과 싸워야 했던 치열한 삶의 흔적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전투로 인해 이제는 모서리들이 둥글게 변한 지점도 분명 남아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을 이미 겪어낸 분이라면 아직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울고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보일까요.           

젊은 시절에는 내 안의 그릇이 좁아 담을 수 있는 것도 작습니다. 그러다보니 흑과 백이 분명하게 나뉘기도 하지요. 흑백이라는 이분법에 빠지기 쉬운 것은 흑과 백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의 연륜이 쌓이다보면 알게 되지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딪힘 속에서 흑은 때로 백이 되기도 하고 백이 흑이 되기도 하며 결국 흑과 백은 보이는 것만 다를 뿐 안으로는 수많은 색을 품은 같은 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네 편 내편 없이 중도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황희 정승이 ‘네 말이 옳구나’ ‘당신 말도 옳소’라고 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어릴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됐는데 나이가 드니 남편이나 아내도 생기고 자식도 생기고 부모 역시도 내가 챙겨야 하고, 더 시간이 지나면 손자들도 생기며 내가 품어야 할 것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기억될까요.          

지식과 지혜가 다르듯이 나이 듦과 어른 됨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행자나 철학자처럼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내 마음 안에서 모든 일의 원인을 찾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경험한 만큼 사람이든 현상이든 품을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도 다르지 않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고 일어나는 일을 반복해 얻게 되는 나이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겪은 시간만큼 젊은이들을 품어줄 수 있고 그들에게 지혜를 나눠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도 품어보고 설령 그 속에서 잘못된 점을 발견한다 해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그들의 시간을 기다려줄 줄 아는 그런 어른 말입니다.           

자신이 정해놓은 규정에 흑과 백을 정해놓고 누구도 반발할 수 없도록 선을 긋는 독선적인 어른이 아니라 이 세상에 고정불변의 진리가 없듯이 조금은 유연한 사고로 젊은이들과 화합하는 그런 어른이 그립습니다. 그런 어른이 내 가까이 있다면 찾아가 삶의 지혜를 물으며 밤새 이야기 나누고 싶다 생각하는 그런 가을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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