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나게 된 이 문장의 강렬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비누냄새를 좋아했던 것도 이 문장 때문이었고 집에서 쓰던 비누를 망사에 담아 매일 주머니에 갖고 다닌 것도 이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가수 정수라를 닮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은 어린 여중생들을 앞에 두고 이 문장을 읽어주며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이 소설을 꼭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춘기 여중생들에게 부모님의 재혼으로 남매가 된 두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설렘 그 자체였지요.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내 꿈은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부터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꿈이 정해진 것은 순전히 소설의 첫 문장을 들려주셨던 국어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문학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어주며 환상을 키워주신 덕분이지요.
꿈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과 조금씩 타협하게 마련이지만 선생님 덕분에 꿈을 꿀 수 있었고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직접 소설의 기법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문학이 어떤 것이라는 방향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비누냄새를 직접 상상하게 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면서 문학의 의미를 오래 가슴에 품게 하는 일, 참된 교육은 그처럼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얼마 전, <평택시사신문>에서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했던 선배 기자들이 사무실을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전공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그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건축학과에 진학한 아이도 있고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아이도 있고 간호학과나 영문학과,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한 아이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건축학과에 다니는 아이가 던진 말이 오랫동안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면 아무리 좋은 건물을 설계해도 건축주가 우선이니 애초에 현실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했다는 얘기에는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굳이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그런 조언을 해줄 필요가 있을까 혼자 내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고민은 이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현실과 부딪치며 배워도 늦지 않으니 학창시절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모델로 삼아서 이 세상에 남길 위대한 건축을 만들 꿈을 꾸라고 말입니다. 인간이나 자연과 수백 년을 함께 해야 할 건축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을 향해 정진하라고 말했습니다. 최소한 그가 누군가를 교육하는 사람이라면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학생들에게 건축물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건축을 ‘가리키’며 그것의 의미를 품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오래 마음이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