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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91. 일상의 행복

오늘은 뭔가 좀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때가 있었습니다.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생겨 명품 액세서리를 사거나, 비싼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누군가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고백을 받거나, 멋진 선물을 받는 그런 특별한 상황 말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한 일상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던 그때는 아침에 눈 뜨면 똑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죽을 만큼 숨이 막히고 힘들었습니다. 때문에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평소 가졌던 답답한 마음에 쇳덩이 하나를 더 얹은 것만 같았지요.

바다 풍경이 멋진 그리스에서 딱 한 달만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그러다 잠들고, 자다 일어나 배가 고프면 슬리퍼를 끌고 해변 근처로 나가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 소원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소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 행운이 온다면 기꺼이 즐길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최근에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아니면 의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일까요.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예전보다 한결 평온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났고, 싫은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정성들여 고른 옷을 차려입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이 느껴진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벗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인생을 배워가는 자식들의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보다는 조금 더 성장하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되니 생각처럼 마음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키가 작아 하이힐만 고집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뭉툭한 운동화를 신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일이 줄었고 그만큼 마음이 자유로워 진 것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봄에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화사하게 핀 꽃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 사이로 빗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가을에는 아껴두었던 버버리코트를 꺼내 입을 수 있어 행복하고, 겨울에는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볼 때 예전처럼 직업이나 외모가 먼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굵어진 손마디가 먼저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서 자꾸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점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노인들과 함께 마주앉아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도, 토요일 아침마다 부모님과 함께 둥근 밥상을 펴고 앉아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는 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상이 된 것도, 함께 마주앉아 ‘달달이 커피’를 마시면서 한주 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부모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입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가족을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오늘이 지나고 선물처럼 내일이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최선을 다해 내 안에 소소한 행복들을 가득 가둬놓을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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