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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미다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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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77. 부모의 마음

올해도 추석명절이 되어 안중에 있는 친정집에 들렀습니다. 친정이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들르기는 하지만 명절에 가는 친정은 조금 특별합니다. 멀리 사는 동생들은 물론이고 조카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어린 아이들의 재롱에 박수도 칩니다. 골방에서 과일이며 떡이며 이것저것 내오시는 부모님에게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는 애교 섞인 투정도 부리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시는 것을 잘 알기에 못이기는 척 주시는 대로 받아먹습니다.     

부모님이 사시는 연립주택단지에는 아직 이웃 간의 정이 남아 있어 명절이면 옆집에서, 앞집에서 음식들이 연신 배달돼 옵니다. 빈 그릇을 그냥 못 보내는 부모님은 우리가 한 음식을 빈 그릇에 가득 담아 다시 아이들을 시켜 옆집으로 앞집으로 배달을 보내고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외국인 노동자의 방에는 이것저것 더 담아 한상 가득 차려 건네줍니다.       

부모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는 간간이 노인정에서 어르신들끼리 자식자랑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당신들이 자식에게 잘 하는 이야기는 없고 자식들이 잘 한다는 자랑만 가득하다는 말도 하십니다. 자식 자랑을 할 때 어르신들이 가장 힘이 넘친다는 이야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듣게 된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입니다. 그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겪었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사실일까 의심도 듭니다. 그것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아파트나 젊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 주변에 수많은 먹을거리들이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까지 않은 마늘은 물론이고 쌀이나 보리, 찹쌀, 김치, 채소, 심지어는 멀쩡한 고기까지 포장도 뜯지 않고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어르신들은 벌써 여러 번 버려진 음식들을 가져다 드셨다고 합니다. 마늘은 까서 음식에 넣어먹고 고기도 양념해서 드셨다지요. 자식들은 그 말에 상한 음식이면 어쩌느냐고 타박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음식이었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저 더 놀라울 밖에요.     

부모가 애써 농사지어 바리바리 싸준 것들을 아마도 젊은 자식들이 귀찮아서 또는 다른 이유로 내다버린 것이라며 부모 마음을 그렇게 내다 버리는 자식들을 보니 세상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도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에는 또 그런 음식들이 가득 버려질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우리들의 차 안에도 부모님이 싸주신 음식들로 가득합니다. 김치부터 장아찌, 심지어 농사지었다는 부추에 과일까지 트렁크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며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싸서 보내는 부모의 마음과, 그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지도 않고 버리는 자식들의 마음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 우리가 시부모나 친정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뒤늦게야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서럽게 가슴을 치며 울게 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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