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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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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Mar 10. 2021

우리 아파트

거의 4,000세대가 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독립을 하면서 이 곳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다. 전에 부모님과 같이 살던 곳은 세대수가 적고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밖으로 나가보면 '누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계단식 아파트라 누굴 마주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처음 이 곳으로 이사 오고 정말 놀란 일이 있었다. 헌 옷들을 한데 묶어 대용량 봉지 2개에 담아 현관밖에 두었다. 헉!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헌 옷을 담아 놓은 봉투 하나가 없어진 것 아닌가. 놀랐고 무서웠다. '도둑이 우리 집 물건을 가져갔구나!'하고 떨며 결혼하고 이 동네에 먼저 살고 있었던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우리 집 앞에 있던 헌 옷 봉투가 없어졌어!!!" "아, 응 그거 집 앞에 두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가져가셔" 담담하게 말하는 언니.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하는 걸 보니 이게 일상이구나 싶었다. A4용지를 얼른 가져와서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붙여 놓으니 그때부터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언니한테 자세히 들으니 복도에 물건을 그냥 두면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해 수거하시는 분들이 가져가시는 거란다. 그것도 모르고 도둑으로 생각했으니 죄송할 따름이다.

또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생긴 일이다. 이사 온 지 1주일 안되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 아주머니께서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이사 잘 마쳤어요? 밖에 물건 다 내놓지 말아요. 그럼 다들 가져가니까." "네, 감사합니다." 대답을 하고 내리는데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내가 그 집인 줄 어떻게 알고?' 옆에 있는 언니에게 너무 신기하다며 배꼽을 잡고 웃으며 얘기했다. 이사 온 사람이 누구인지, 몇 호인지를 훤히 알고 있는 것이 전에 살던 동네와는 판이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 동네마다 분위기나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달라" 하며 언니가 웃었다.

그로부터 이제 1년 하고 3개월이 지났다. 복도식 아파트의 전경, 이웃들의 소곤소곤 소음, 경비아저씨의 낮잠, 단지 내의 나무들, 새들이 주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나무가 많다.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나무에서 쉬는 까치들, 이름을 모르는 새들도 많다. 우리 집 창문 밖 나무는 가슴 털이 보송보송 아기 까치의 쉼터이다. 나무들이 아파트를 담은 것인이 아파트가 나무들은 담은 것인지, 대단지 아파트에 대규모 나무들이 어우러진 우리 동네에는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이 존재한다.

이젠 '우리 아파트'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 독립도, 동네도 낯설고 어색했던 것이 점차 각자의 자리를 찾고 있다. 언젠간 이 동네를 떠나겠지만 내 첫 독립을 책임져준 이 곳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다른 보금자리로 가게 될 때. 우스꽝스럽고 신기했던 첫 경험을 기분 좋게 떠올리며 이 곳을 떠나고 싶다. 직업에 대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금, 아파트 곳곳 나무들의 파릇파릇함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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