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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Oct 16. 2020

카테고리의 덫

[씨-멘트] 스티븐연은 유일하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는 걸 좋아한다. 그가 누군지 몰라도, 카테고리 안에 밀어 넣으면 이해하기 쉽다...(중략) 개인(individual)은 유일하다. 나와 같은 사람은 나뿐이다.
(배우 스티븐연, 2017년 7월 인터뷰 중)


"조금 있으면 OOO 오니깐, 인터뷰 준비해."

기자로서의 내 첫 직장은 스포츠지였다. 그곳에서의 인터뷰는 종종 이런 형태로 진행됐다. 그나마 1시간이라도 주어지면 다행이지만, 당장 몇 분 전에 이런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능한 빠르게 정보를 취합해 '그럴싸한' 질문지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스타'들이 아닌, 신인 연예인의 경우 이런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매체의 힘이 예전보다 더 희미해졌고 회사로 내방해서 1대 1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드물어졌다.)


세부적으로 나눠둔 카테고리형 질문이 이럴 때 참 유용하다. 연기파 신인 배우에게는 롤모델을 물어서 '송강호'나 '최민식' 같은 선배 배우의 이름을 이끌어내거나, 미혼의 연예인에게는 이상형이나 결혼 계획을 묻거나, 신비주의 이미지라면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을 묻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나이로, 직군으로, 성별로, 출신 지역으로, 학벌로, 데뷔 형태로, 소속 회사로 다양하게 나뉜 카테고리를 통해 몇 번이고 사용되어 검증된 질문을 건넨다. 질문과 질문 사이를 어색하지 않게 넘어가는 것은 각자의 타고난 역량이거나 혹은 경험치다.


이러면 준비 시간이 짧아도, 주어진 1시간 동안 어느 정도 유의미한 인터뷰 기사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문제는 연차가 쌓이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져도, 이 같은 카테고리화를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어쩌면 상당수의 대중이 범하는 실수이기도 했다.

영화 <버닝> 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했던 배우 스티븐 연을 마주했다. 그는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해 이미 전 세계에서 큰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배우였다. '미국에서 가장 핫한 아시안 배우'라는 수식어를 정작 그가 선호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을 꺼냈을 때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흔히 카테고리에 누군가를 밀어 넣고 자신들의 이해를 수월하게 한다는 설명이었다. 스티븐 연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누구인지 몰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찔끔했다. 정형화된 카테고리를 활용해 인터뷰를 수월하게 넘어갔던 지난 시간이 스쳐서다. 실상 카테고리라는 것은 누군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카테고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그날의 인터뷰의 흐름의 핵심은 '개인(individual)'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사람이고, "나와 같은 사람은 나뿐이"라는 결론이다. 배우와 마주 앉아서 '개인' '개인주의' '정체성'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했던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니라서 스티븐 연과의 인터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할애된 1시간 안팎 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시간을 최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터뷰에 앞선 사전 자료조사, 가능한 질문 수량보다 몇 배에 달하는 질문 준비, 이전 인터뷰에서 몇 번이고 답했던 내용을 모른 채로 다시 묻는 일을 최소화시키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인터뷰가 끝나면, 녹취 혹은 기록을 인터뷰의 몇 배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곱씹는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글로써 뱉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희한하다. 인터뷰라는 행위는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오히려 더 어렵다.


스티븐연과의 인터뷰는 기가 막혔다. #옥자 #워킹데드 #영어지옥
Interview with Steven regarding individualism and how we can change other's perspe. #연상엽




*[씨-멘트]는 최근 10년간 직접 만나 인터뷰했던 이들의 '멘트' 한 단락을 소환, 그것을 토대로 내용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말의 책]입니다. '말'이 가진 생명력이 물리적 시간을 초월해 오래도록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see.ment]는 'OO씨의 멘트', '멘트를 보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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