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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Oct 25. 2020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

[씨-멘트] 문채원의 위로

해외토픽에서 위로를 받는다.
(2010년 11월 배우 문채원 인터뷰 중)


삶은 크고 작은 일들이 한데 뒤엉켜 만들어진다.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일들도 겹겹이 등장한다. 원하는 대학을 못 가거나, 간절하게 꿈꾸던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예고도 없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갑작스럽게 금전적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제 정말 다 끝났어'라고 생각되는 순간들. 그 경중은 다르지만 사실 모두의 인생이 결국 다 그렇다.


'나 이번 생은 망한 건가?'


방송국 PD 시험에 떨어진 것을 확인했던 지난 2009년의 어느 날, 자책감에 휩싸여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 책망했다. 그보다 앞서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와서 원하는 대학을 지원할 수 없게 되어 크게 낙담한 적도 있다. 당시만 해도 세상이 모두 무너져 내린 것만 같던 그 일이, 10~20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사실 별일도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대학생이나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종종 한다.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


(슬프게도) 큰 도움은 안 될 거라는 것도 안다. 여러 SF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미래의 나'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의 조언으로 지금의 괴로움을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저한 타인의 말 정도로는 도무지 안도가 되질 않는다. 왠지 이번에 벌어진 일만은 내 인생에서 중차대한 일이라고만 자꾸 생각되고, 그러니 더 속상할 따름이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공간을 뛰어넘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다행히 문명의 발달로 인해 지구 반대편 이야기도 거의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 먼 곳에서 벌어진 몹시 황당한 일들을 보며, 이번에 내게 벌어진 이 일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지를 비교해보는 거다. 분명 그 자체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 스틸


이는 지난 2010년에 드라마 '괜찮아, 아빠 딸' 주연을 맡았던 문채원 배우가 인터뷰 때 알려준 방식이다. 힘든 순간이 곳곳에 산재한 우리네 인생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해외토픽을 보는 것"이라니.


예를 들면 내가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치죠. 근데 해외토픽을 봤더니 '지구촌 카사노바, 120명을 사귄 13세 소년' 이란 기사가 있는 거예요. 그걸 보면 금세 쿨해지죠. 위로를 받는 거죠.


그때는 '참 4차원(*당시 이 단어가 유행했다)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방식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 그것은 마치 미래의 내가 건네는 '지나고 나면 결국 별 일 아니야' 만큼이나 퍽 위로가 됐다.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견뎌내고, 정말로 별 일 아닌 것처럼 지금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후에도 몇 번 문채원 배우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늘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건져왔다. "인생 뭐 있다"도 그중에 하나다. "삶은 한 번뿐이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는 뜻"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무슨 일을 하든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제일 싫어하는 유형은 옆에서 포기를 종용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는 누군가에게 번져 나가게 애쓰는 일이다. 그러니깐 인터뷰어는 그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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