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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Oct 29. 2020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창조한다

[씨-멘트] 이준기가 경계하는 것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창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2018년 9월 배우 이준기 인터뷰 중)


취준생 시절, 직장에 들어간다는 일은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숙련된 선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꿈꿔보는 시간. 이날을 위해 그토록 긴 학창 시절을 애쓰며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 일정한 금액의 '급여'를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실질적 어른'이 된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학업이 아닌 무언가가 본업이 되는 그 시기는, 모든 게 다 설렜다.


직장인이 되고 맡은 업무가 익숙해질 무렵, 고비가 찾아온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삶을 마주하게 될 때다. 그게 1-2년 차 무렵이란 사람도 있고, 4-5년 차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어쨌든 대다수 직장인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피어난다. 그 누구도 "직장 생활은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거지"라는 답변이, 보통의 답변이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일을 한다.


기자라는 일이 익숙해지고, 대부분의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만큼의 네트워크가 생겨났을 무렵, 문득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나를 덮쳤다. 평생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였던 학창 시절의 나는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뉴스를 급히 '처리'하고 있는 나만 보였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걸리는 게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한 번 생겨나니, 이후에는 지속적인 회의감이 밀려왔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왜?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기니?"

"아뇨, 지금 행복하지가 않아서요."

"뭐? 뭔 헛소리야. 일이나 해"


그런 말을 남기고, 처음으로 다음의 행보를 정하지 않은 채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나중에 들었지만 우리 대표는 내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걸 말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딴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했다.


인터뷰를 할 때, 신인과 스타는 차이가 있다. 신인은 눈 앞에서 당장 철이라도 씹어먹을 열정으로 주어진 시간에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스타는 그렇지 않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고민하고 조심한다. 커진 영향력으로 인해 파장이 염려돼서 그렇기도 하고, 쌓인 연차로 인해 다소 의무감에 떠밀린 '업무'라는 생각에 그러는 경우도 있다. 마치 오래된 직장인들처럼.


영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스틸


인터뷰뿐 아니라 본업에서조차 그럴 때가 있다. 연차가 쌓인 배우들은 연기 스킬이 늘어나면서 기계적으로 역할을 소화하기도 한다. 어떤 고민도 없이, 해왔던 대로 그냥. 배우 이준기는 그런 것을 경계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기술적'으로 나오는 그런 연기를 염려하며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창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작품에 나서는 이준기를 볼 때마다, 그때 그가 내놓은 멘트가 떠오른다.


스스로 일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서 헤매기 시작한 이들 역시, 이 말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서툴더라도 애정 가득했던 언젠가의 시기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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