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멘트] 류승완 감독의 CD 한 장
콘텐츠 산업이 무너지는 이유는 '베짱이'를 놀고먹는 직업이라 인식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면 'CD 한 장만 달라'고 한다. 반대로 본인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땀 흘려 만든 것을 공짜로 달라고 하면 기분 나빠한다. 콘텐츠가 노동집약적 상품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들이 너무 없다.
(영화감독 류승완, 2015년 8월 인터뷰中)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원시시대에도 물물교환을 통해 서로가 필요한 것을 주고받았고, 화폐가 생겨난 이후부터는 각각의 가치를 책정하여 줄곧 그 가격을 매겨왔다. 각자 잘하는 영역을 분담하여 서로의 시간을 절약하고, 서로의 노력을 화폐 가치로 환산해 맞바꿨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다만, 콘텐츠 분야에서는 유독 이 합의가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다. 요상하다. 무료 콘텐츠에 익숙해진 탓일까. '유료'라는 말에 놀라 소스라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내어놓기 아쉬워하는 경우를 종종 마주한다. 업계에 있다 보면 특히나 더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너 책 냈다며? 사인해서 한 권 줘."
"이번에 공연한다며? 나 티켓 몇 장만 줘."
심지어 친구와 가족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10장의 티켓을 요구하고는 결국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이도 있었고, 강연 후 Q&A 시간에 질문자에게 답례로 책을 한 권 주었더니 끝나고 와서는 '몇 권만 더 주면 안 되냐?'라고 요구했던 이도 있었다.
열과 성의를 다해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어떠한 이유로 저렇게 당당하게 내놓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떤 표정일지 늘 궁금하다.
"너네 회사 노트북 신형 나왔더라? 나 하나만 줘!"
"요즘 몸이 좀 안 좋은데, 너네 한의원에서 보약 좀 남는 거 줄래?"
류승완 감독을 만나 인터뷰한 것은 영화 <베테랑> 개봉을 앞뒀을 때다. 그는 영화인을 바라보는, 좀 더 확장해 콘텐츠업 전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에 대해 동화 속 '베짱이' 이야기를 꺼내 비유하며 아쉬워했다. 류 감독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K-콘텐츠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 콘텐츠에 제 값을 지불하는 문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베짱이는 놀지 않는다. 음악을 만들고 또 연주하기 위해 충분히 애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