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이 말을 내가 얼마나 많이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오는 해를 맞는 마음보다 보내는 해에 대한 감정이 깊어진다. 한 해를 이렇게라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신년을 맞는 마음도 설렘보다는 심란함이 더 깊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연말연시도 그냥 365일의 하루일뿐이야”하고 초연한 척해보기도 했다. ‘365일 중 하루일뿐’이라는 태도는 연말연시에 의례히 갖는 의식도 사라지게 했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인사도 아주 간소화되었다. 보통은 카톡이나 문자로 대체된다. 잘해야 전화를 통해서 목소리로 안부와 새해 인사를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냥 하루’가 아닌, 연말연시의 의미를 새기는 날을 보내려고 한다. 어렸을 때 연말연시를 맞던 기분을 다시 가져보려 한다. 그림엽서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뜸했던 동문회 송년회도 가고, 마을의 소모임 사람들과도 저녁도 먹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려 한다. 그러면서 SNS로 나누던 이야기를 직접 나누어보려 한다.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는 진행될까?
한 해에 있었던 힘든 일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 젊었을 때는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비루해 보여 꺼렸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면 어려움을 토로하는 데 꺼리낌이 없다. 자신의 고통을 경쟁하듯 쏟아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슬픔과 좌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으니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송년모임은 신세타령을 하는 자리가 된다. 모든 모임이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어서 그 고민과 상황이 비슷하여 타인의 고민이 크게 이해 못할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중년의 고통과 고민은 끝이 없다. 현재의 고민거리가 사라지면 다른 고민이 비집고 들어온다. 고민거리가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생이 고민과 고민으로 이어지는 체인과 같다.
이렇게 고민으로 꽉 찬 마음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토로하다보면 듣는 사람의 상태를 신경 쓰지 못할 때도 많다. 타인의 상태뿐 아니라 타인의 고민을 주의 깊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태에 놓은 타인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결국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감정 해소의 자리가 되고 만다.
이렇게 힘든 일을 나누는 것도 서툴지만, 기쁜 일을 함께 하는 일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기쁜 일을 나눌 시간은 짧다. 나눌 기쁨의 종류는 적어지고, 그 내용도 대단히 빈약해지고 있다. 그런데 고통은 가지 수가 많고, 내용도 구체적이고 풍부해지고 있다. 불행이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주택문제, 자신의 건강문제, 가족 불화에서 나아가 이웃과의 불화, 직장에서의 어려움, 사소한 질병과 교통사고 등이 포함된다. 상당부분이 경제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모임의 화제가 기쁨보다는 슬픔과 걱정이란 방향으로 쏠리는 것은 우리가 불안 속에 살며, 일상 속에서 사소한 부딪힘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는 반증이다. 정작 힘든 것은 실제적인 일보다는 마음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소하고 잔잔한 우리의 기쁨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계량화할 수 없겠지만 기쁨의 크기가 스트레스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으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절망적인 날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역설적으로 희망이며 매일매일 경험하는 사소한 기쁨이지 않을까?
우리의 마음은 고통이라는 파동을 기쁨이란 파동보다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느낌의 크기와 달리, 소소한 기쁨의 파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몸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작은 파동은 실핏줄. 작은 근육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가 일부러 둘러보지 않으면 이 작은 파동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올해를 보내면서 친구들, 이웃과 함께 자신의 좌절과 시련을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것 중요하다. 그런데 그와 함께, 이런 이야기도 해봤으면 한다. 올해 일어난 일 중 자신을 감동시킨 사람, 소중했던 감정,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얼굴과 풍경 등등이다. 작지만 소중한 순간, 아니 너무 많아서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해보려 한다. 과장도 아니고 비현실적인 관찰도 아니다. 짓누르고 있던 복잡하고 힘들고 짜증스런 마음의 저편, 늘 보던 것 이외의 다른 쪽을 보는 것이다. 온 몸으로 부딪혀 온 지난 1년을 찬찬히 그대로 보려 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새해에 희망이란 풍선을 띄울 수 있는 숨은 자산이 있을 것이다.
“또 한 해가 온다.”
언제부터인가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직장, 직업적 계획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계획이라기보다 집단의 계획이며, 내가 아닌 누구라도 대체되서 할 수 있는 일의 나열이다. 나를 성장하게 하고, 만족감을 갖게 하는 계획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새해 계획을 갖지 않은 이유 중 큰 것은 내 삶의 계획이 아닌 다른 계획에 묶여 바쁘다는 이유, 또는 내 계획이 실패한 좌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년 하는 일이다. 잘 안 될 것이다”라며 신년 계획 세우기를 하지 않았다.
새해를 맞으면서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새해 계획 짜기,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려 한다. 그 생각만으로 비장해진다. 늘 염원하면서도 실제적인 꿈으로 계획화하지 못했던 것들을 온전히 내 꿈으로 만들어보자. 실패할까 두려워 겁을 먹은, 그래서 나태해진 여린 마음과 정신에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만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해보려 한다. 나를 응원할 수 있는 제일 큰 후원자는 나 자신이다. 실망과 포기는 더 많은 두려움을 만들고, 좌절에 무덤덤해지게 한다. 그리고 ‘또’라는 무서운 말만 내뱉을지 모른다. 절망이 포개지는 ‘또’, 희망도 전망도 없는 ‘또’ 말이다.
이제는 그 또 대신 ‘다시 시작하는 또’를 말하고 싶다. 오뚜기와 같은 반동이 일으키는 시작이 아니다. 그 모양 그대로인 모습으로 일어서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지 않는 의례적인 상투적인 시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한 변화이지만, 나는 조금씩 다르게 변화하여 '또 다시'를 외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명이 있는 인간임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또 다시 좌절하고 무릎 끓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 해를 맞고 싶다. 흰 도화지에 색연필을 준비할까. 아주 어릴 적 어느 저녁처럼 내 새해 계획과 희망 사항을 예쁘게 적어볼까. 누구에게는 싱거운 소소한 것일 수 있지만 색깔이 알록달록한 계획표를 잘 보이는 곳에 붙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어릴 때와 달리 내 희망에는 세부적 계획, 일정도 같이 할 것이다. 그런 희망과 계획을 친구와 함께 나누는 새해 맞이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