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종합병원

by roads


박준 시인의 '태백중앙병원'이란 시가 있다. "태백중앙병원의/환자들은/더 아프게 죽는다" 이곳 군의 종합병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명절 연휴를 앞 둔 병원은 바쁘다. 병원 내원 환자들은 대부분 늙었다. 보호자도 늙었다. 30여분 거리에 있는 도시 원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다. 군에서 제일 큰 병원, 나름 수술실도 있고, 입원실도 있다. 수술은 대부분 늙은 환자들의 관절 관련 수술이다. 오래 쓴 몸 속에 부속품을 갈아끼우는 수술이다. 원무실의 접수, 수납을 하는 환자들도 느리다. 접수계와 수납계의 직원의 소리가 크다. 느리고 더딘 환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단단한 성량이다. 밖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어둠침침한 분위기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고단한 직원의 높은 억양에 움직인다. 늙어가는 나도 그 소리에 섞여 있다. "군의 종합병원 H의/환자들은/더 휘청거리며 꾸부정하게/ 나아간다. "


이런 병원의 전체적 분위기와 다른, 노화와 다른 색깔을 한 20대 여성이 오늘 눈에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은 여성의 단발머리가 단정하다. 짙은 갈색과 검정색이 섞여있는 머리결이 머리 위 천장에 매단 등에 빛을 낸다. 휠체어 발판에 두 발이 얌전히 올려 있다. 여성은 어깨를 곧게 펴고 앞을 보고 있다. 환자와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보호자가 휠체어 옆 벤치에 앉아 있다. 이 병원에에서 접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보호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입원할 수 없단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보호자는 아침부터 헛걸음이 억울하고 또 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친 상태이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자신이 얼마나 힘든 지를 못 알아주어 화를 낸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고 소리친다. 전화기로 들리는 소리가 보호자보다는 젊고 차분하다. 늙은 보호자는 점퍼를 열어제친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침표를 찍기 전에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나 화가 치민 표정으로 복도를 거닌다. 그리고는 대뜸 "네가 죽어도 내가 걷울 터이니 그냥 가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보호자의 격한 마음이 가까이 있는 나에게도 전해진다.


휠체어 여성은 정면을 곧곧히 바라보고만 있다. 곁눈질로 본 여성의 검은 눈동자가 마치 저 눈 뒤에 어디에선가에 고정되어 있는 듯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눈이 격정으로 휘청거리고 출렁거린다. 몸은 미동이 없다. 억울하고 화가 난 보호자의 소리와 부산한 움직임에 한번쯤 반응을 보일 만한데 조용하다. 돌보겠다는 늙은 여성은 마치 포효하는 쟌다르크 같고, 속내를 드러내는 돌봄을 거부할 수 없는 여자는 절망과 분노를 표현할 수 없는 몸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여자는 갇혀진 자신의 몸만큼 갇혀진 감정과 울분이 나에게 왔다. 난 박준의 시집에 다시 눈을 놓는다.


낡은 병원에서 젊은 영혼도, 늙은 영혼도 불안으로 흔들거리고 있다.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들은 저당잡힌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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