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라는 말

by roads

"고맙습니다"

엄마가 전화 수화기를 내게 건네기 전에 전화를 건 친구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집전화를 쓸 때다. 전화를 건네받으니 친구가 웃고 있었다. 엄마의 이런 말에 익숙해져 있는 친구였으나 매번 웃었다. 엄마가 귀엽다고도 했다.


엄마의 입에 배인 말, 고맙습니다. 엄마가 원래부터 그 말을 자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엄마 나이의 여느 어른보다 열심히 산 분이셨다. 고생도 많고 그 고생 때문에 거칠어진 분이시기도 했다. 그런 변화는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보다 엄마가 도와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족이 그렇다. 가족이 엄마의 도움이 필요없어지던 때, 엄마는 가족을 먹여살렸던 가게 일을 그만두었다. 이미 엄마 나이 50대 중반이 넘어 있었다. 여기저기 몸이 삐꺽거리면서 편안할 날이 없게 되었다. 오랜 고생의 후과는 몸에만 남지 않았다. 장사를 하며 손님에게 하던 말이 남았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전화를 바꿔줄 때도 끊을 때도 상대방에게 고맙다고 한다. 무엇이 고맙나? 인사말을 잊었나? 나도 궁금했다. 전화 통화만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집에 계량기 검침온 사람에게, 마주친 타인의 아주 사소한 행위에도 엄마는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했다. 말만 아니었다. 표정과 몸짓도 그와 연동해서 움직였다. 나는 종종 그 모습이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엄마가 한없이 작아보였다. 측은할 정도로 세상에 저자세인 것이 싫었다. 자신이 불쌍해보이는 것을 모르는가. 그래서 내가 한번 엄마에게 "뭐가 고마워. 고맙다는 말 좀 그만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날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말 습관이 오직 장사에 밴 습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요즘 깨달았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부디끼며 살 때, 바쁘게 움직일 때는, 고맙다는 말을 교환이 이루어질 때만 했다. 그런데 그 경우가 확장되고 있다. "언니, 뭐가 고마워?" 하며 어제 전화한 후배가 말했다. 전화를 걸어주니 고마웠다. 정말이었다. 멀리서 하는 전화니 반갑고 고맙다. 특별한 용무가 없이 한 전화니 더 그렇다. 내가 누구에게 기억되고 대화할 상대가 된다는 것이 그렇다. 내가 외롭긴 하나보다. 말이 고프다. 엄마도 그랬으리라. 자신에게 온 전화가 아닌데도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 좋은 것이었다. 그 기쁨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리라.


나도 엄마처럼 고맙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작은 친절에도 나도 모르게 많이 감사해 한다. 예전에는 의례적으로 했을 감사의 횟수가 늘고, 감사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있다. 세상에 감사해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닐 일이 힘들어지니 그 힘든 일을 도와주거나, 함께 나누는 말과 행위가 고맙다. 내가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거부되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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