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

구룡사 대웅전에서

by roads

구룡사 대웅전이 산 위에서 굽이치는 산 주름을 보고 있다. 대웅전 안에 높이 치솟듯 앉아있는 석가모니불이 일주문을 내려 보고 있다. 대웅전 삼불은 일주문 저 밖에서부터 기원을 온 몸 가득히 풍선처럼 품고 오는 중생을 본다.


기원을 품은 중생은 부처 앞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마루에 댄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들어올린다. 온 몸이 촛대가 되고 초가 된다. 그렇게 촛대 위에 초가 되어 기원의 불을 붙인다. 석가모니불이 일주문 밖과 산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것은 중생의 접혀진 몸을 보다가 산등성으로 눈을 돌리기 위함이 아닐지. 석가모니불보다 더 오랜 세월 저렇게 살아 있는 산으로, 기원하는 눈을 함께 옮기고 싶어서가 아닐지. 측은한 마음으로 납작해진 중생의 몸을 감싸고, 산과 일주문 밖을 함께 쳐다보고 싶어서 높이 자리한지 모른다.

녹음 짙은 둥그런 산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중생의 소원이 부질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가 진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불안하게 하는 기도 내용을 부처는 듣고, 원을 들어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기도가 깊어지면 현재의 갈망, 불안과 불편이 작아질 것이다. 그렇게 원은 이루어진다.


기도하는 자는 알 것이다. 온 몸을 접으면서 몸을 작고 납작하게 하는 기도가 바로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일주문 밖의 세상에서 회생하게 하는 소생술이었음을. 그리고 저 산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누구는 사찰 대웅전에 들어가 온몸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가리키며 헛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말할 수 있다. 허약한 인간의 어리석음, 무지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소원이 바람처럼 사라지면 누구는 그것을 체념이라 하고, 허망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웃는 누구는 저렇게 열심히 온몸으로 기원할 것이 없어서 다행이다. 자신의 미약함을 매일 느끼며 살지 않아서 행운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를 그냥 놔둬라. 새벽 대웅전 마룻바닥에서 기도하는 자는 누구보다 절실하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드러내며 외치는 솔직한 자들이다.


서투른 종교론을 말하지 말라. 믿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종교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사찰과 종교 기관에 가지 않는 누구도 자신의 믿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가난한 생명체이다. 가난한 자가 의지할 것은 저 산과 사찰과 기도하는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을 조금 더 작게 만드는 행위는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이전 10화늘어나는 약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