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는 약병들이 늘어져 있다. 루테인, 멀티비타민, 마그네슘, 연골영양제, 비타민 D, 폴리코사놀, 버섯분말 병들이 각각 다른 색깔, 다른 크기로 세워져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방의 구석진 곳에 있는 펜트리에는 아마씨, 험프시드, 브라질 너트, 견과류, 유산균 캡슐, 1000ML 용량의 병에 담긴 매실액, 노니, 여주즙 등이 뒤죽박죽 서있다. 며칠 전에 구입한 불면증에 좋다는 타트체리쥬스도 있다. 영양제들의 약병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매일 먹는 것의 개수만 해도 10여개가 넘는다. 여기에 면역력을 상승시킨다는 몇개의 차도 있다.
여기에 지난 일주일 사이에 처방전의 약이 추가되었다. 어지러움증을 예방해주는 약과 리피우리정이란 고지혈증 약이다. 병원에 의해서 질병으로 명명된 것들의 약이다. 항암을 받는 동안 항암 부작용을 다스리는 구토제, 두통약 등은 펜트리의 아랫단 구석으로 옮겨졌다. 좁은 공간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것은 건강 관련 물품이다. 6단으로 이루어진 펜트리가 틈이 없이 채워졌다. 펜트리 옆에 놓인 책장에 들어선 빽빽한 책들, 선반의 꽂힌 책 앞은 작은 병들이 들어갈 공간이 있다. 이제는 그 공간으로 약병들이 세워져 책 제목을 가린다.
사는 공간을 더이상 늘릴 수 없고, 이사할 때의 짐을 적정하게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물품 중에는 책과 옷 등이 포함된다. 내 결심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켜지고 있다. 건강과 관련한 지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물품을 구입할 여유가 없다. 지난 주에 지출한 병원비가 60만원이 넘었다. 갑작스런 어지러움증 때문에 응급실로 갔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 비의보 검사가 대부분이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환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검사였다.
건강과 관련하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막연했다. 그런데 어지러움증으로 병원을 찾아갈 때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자주 있을 수 있겠고, 그때마다 더 심신이 약해지고, 병원에 더 의존하게 되며, 그에 따라 병원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실비보험을 들었어야 했나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국민의료보험 하나만을 의지해 살기에는 현실의 의료비용이 버겁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몸과의 씨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시간의 축적과 함께 자기 몸을 둘러싼 불유쾌한 상황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인다. 중증으로 분류되는 병과 중증으로 분류되지 않는 많은 질병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중증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는 평범한, 보통의 질병이란 의미일 것이다. 암의 경우는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암으로 인해 비용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보통의 질병으로 분류되는 노환은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자연스런 과정으로 이해된다. 병원에서 '노환입니다'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늙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내가 나이드는 날 탓해야 한다.
이제까지 나에게 '자연스럽다'는 말은 아름답고 포근한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기쁨과 선의로 가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모든 만물과 현상이 항상 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좋고 나쁨 그리고 또 다른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스러움도 마찬가지다. 60년 동안 나였으며, 나의 정신과 영혼을 버티게 한 몸 덩어리를 자연스럽게 안고 가야 한다. 이제는 자연스러움의 어떤 면만을 보고 가야 하는가. 늘어나는 약의 종류를 보면서 날 지탱해주는 고마운 것으로 생각하자. 저런 약이 조금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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