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을 앓고 있을 때 당신은 진정 깨어 있지 못하고 결코 진정 잠들지 못한다. 불면을 앓으면 진짜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아득하다. 모든 것이 복사의 복사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대사.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에서 재인용
우편물 도착안내서가 현관문에 붙어 있다. 오늘 오후에 집배원이 왔다갔나보다. 보낸 곳이 군청이다. 등기라면 중요한 것일 터인데. 2차 방문일인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엇이었을까? 혹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있나? 9월말까지 종합소득세 납부일이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으나 봄에 우연히 세무소에 들렀다가 신고를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거기서 납부액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정식 신고가 아니었나? 가물가물하다. 종합소득세라고 해봤자 인터넷 신문에 기고하는 칼럼에서 나오는 수입뿐인데. 아니면 자동차 정기점검 신고가 문제가 있었나? 점검을 가까운 정비소에서 했는데, 정비소에서 나와 따로 점검 등록 신고를 하지 않았었다. 만약 그것이 문제라면 기한이 훨씬 지났는데 벌금이 얼마나 되려나?
이런 번잡한 생각이 떠오는 시간은 잠자리에 들어서, 노곤할 때이다. 당장 등기의 정체를 밝힐 수도 없을 뿐더러, 안다한들 그 무게도 크지 않을 것이다. 미세할 뿐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는 생각들이 이부자리에서 켜켜이 쌓여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등을 바닥에 붙이자마자 그 탄력으로 튀어나와 나에게 달려든다. 마치 지진의 예진과 같이 몸을 경직시키고, 그 잡념들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나를 흔든다.
그 많던 낮 시간 동안은 무엇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해도 그리 나를 힘들게 하거나 압박시키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일들로 그런 잡생각은 쉽게 덮혀질 성질이다. 그런데 잠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미세한 고민들이 거인처럼 커진다. 그러면서 거인에 압박당하는 시간을 보낸다. 쳇바퀴 도는 듯한 생각의 고리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게 2-3시간을 뒤척이게 만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을 한다. 일어나면 잠은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잠을 설치니 작은 것들이 용솟음치는 것인지, 작은 것들이 먼저 들어와 내 잠을 몰아내는 지 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이 불면의 밤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몽사몽도 아닌 불면증은 '깨어있지도 않고 잠재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무서움을, 불안을 온 감각으로 느끼게 한다. 그것도 끝에서부터. 발 끝, 손 끝에 머리 끝에서 서서히 내 몸통을 흔들면서 오고 간다.
그런데 이런 불면의 밤을 보낸 후 겪는 후유증 또한 무시하기 힘들다. 불면증이 주는 고통은 낮 동안에도 날 위축시킨다. 잠을 설친 후 남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면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철퍽철퍽 걷는다. 심리적 위축이 같이 온다. '고민은 별거 아니야' 라는 안심이 아니라. 내가 작은 것들에도 휘청이는 약한 존재라는 재인식이다. 등기 한장에도 크게 웅성되는 내 정신력이다. 이제는 작은 것조차 모두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 움직인다.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는 겁많은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방정맞다고 휘휘 손사래를 친다. 더 큰 일이 있으면 어쩌냐? 아주 작은 것들이 나의 잠을 방해하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싶기도 하다.
나이듦은 낮의 기력이 떨어지게 하지만, 수면이 찾아오지 않는 밤을 늘린다. 불면의 밤을 줄이기 위해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와 비타민제를 꼭꼭 챙겨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