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좋은 곳으로 좀 이사가라."
내가 살아온 공간이 언니의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나보다. 누추하고 낡아보였을까? 비바람 막아주고, 방이 따스니 좋다라는 집의 기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사실 나는 기본적 생활과 안전만 제공된다면 오케이다. 이보다 못한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공간이 누추하다고 한다면 몹쓸 짓이다.
언니에게 내가 사는 곳이 만족스러울 때는 딱 한번이다. 엄마 집이 무허가 주택에서 당당히 구청에 신고하고 등록되어진 집으로 변신했을 때였다. 엄마 집은 연탄아궁이가 있고, 연탄을 이용해 난방을 했었다. 화장실이 마당 구석에 있던 집이었다. 지금보다 가난한 때였지만, 서울에서 엄마 집과 같은 취약한 시설을 찾기 힘들었었다. 후배가 엄마 집에 왔다고 가난함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집을 2층으로 신축을 했다. 아마도 94년도였을 것이다. 20 여평의 작은 대지에 어렵사리 올라간 집. 엄마와 내가 사는 공간은 15평짜리 공간이었다. 이 넓이도 완공 검사가 나온 뒤, 불법으로 보일러실을 넓히면서 작은 방 하나가 추가되어 넓어진 것이었다. 엄마와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짐들로 집은 꽉찼다. 창고를 옥상에 지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 집은 급속히 쇠퇴해갔다. 1년이 안되어서 공사에 균열이 보였다. 누수가 보였다. 부실공사였다. 장마때나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하면 항상 걱정이었다. 엄마와 내가 사는 공간은 얼룩이지는 벽을 보면서도 살겠지만, 윗층 세입자에게는 항상 미안했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애초부터 의뢰인이 여자라 공사 책임자가 우습게 보고 한 공사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 집을 떠나서 만난 집들도 비슷했다. 시골생활을 하겠다고 간 곳, D 면의 연립 4층, 내가 들어간 곳은 꼭대기층이었다. 시골에서 현대식 구조를 갖춘 집을 턱없이 싼 돈으로 전세를 마련했다. 서울 엄마집보다 10평 이상이나 컸다. 아마도 집주인이 집을 비워두는 것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좋겠다싶어서 싸게 내놓은 것인 듯했다. 오랫동안 비워있던 집이었다. 밖에서 안에서 황량함을 주는 집이었다. 연립이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집이었다. 면 소재지에 이런 연립이 20년 전에 있었다니 신기했다. 지금도 면에선 연립은 이것, 단 한 채뿐이다. 관리비도 없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서울 집이 작아서 갖지 못했던 가구를 몇 개 사다 놓을 수 있었다. 6칸 짜리 넓은 책장, 찬장과 작은 안락의자였다. 그렇게 들어온 집은 추웠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겨울을 보내는 것이었다. 기름보일러였는데, 기름걱정으로 보일러를 부분적으로 약하게 틀어놓았다. 집이 낡고, 북향이어서 온전히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집의 난방비의 2배가 들 것 같았다. 기름비도 걱정이었지만 만약 기름이 떨어지면 배달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이사와서 얼마 후, 이 집이 오랫동안 비워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이 집에서 혼자 살 던 중년남자가 고독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 연립의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 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집이 주는 분위기가 더욱 심란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두번째로 이사한 곳, H읍에 위치한 5층 연립이다. 이번에도 꼭대기 층이다. D면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비워있던 집이었다. H읍은 읍이라 그런지 아파트, 연립, 단독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다. 선택도 가능했다. 그러나 도시와 마찬가지로 전세는 귀했다. 그래서 전세라는 이유로 이 곳을 선택했다. D면과 비슷한 낡은 한 동짜리 연립이었다. 전 집보다 크기는 줄었지만 내가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 옮겨온 짐이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면과 달리 도시가스라 난방비 걱정이 줄었고, 이 집도 남향은 아니었지만 따뜻했다. 누구 말대로 6층같은 5층이어서 처음에 이곳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에 부쳤다.
이 곳에서 신경쓰이는 것은 1층부터 올라오는 냄새다. 어떻게 된 것인지 1층 순대국 집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화장실로 모였다. 탕을 끓이는 냄새와 담배냄새가 겨울에는 더 심하게 올라왔다. 화장실은 방의 중간에 있고, 창도 없고 환풍기도 없었다. 추위에 베란다 쪽 큰 창문을 열어놓을 수도 없어서 냄새는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방으로도 스며들었다. 아랫층의 아줌마에게 말을 해보니, 자기도 그때문에 직접 찾아가서 불만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부터이었다고 한다. 연립 한동이라 관리실도 없었다. 아마도 관리도 입주자 가구가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온라인 계좌로 관리비 2만원을 받는 것이었다.
지난 해 가을쯤,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전 집에서도 일어났었다. 면의 낡은 연립을 서울에 사는 주인이 관리하기 힘들다고 집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살고 매매 희망자가 나오면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겨울 살이가 힘들었으나 그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름 안정화되어가던 때였다. 2년의 전세기간이 끝나면 전세비를 올려주고 계약을 연장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주인이 자기가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사실 이 주인도 내가 계약한 주인은 아니었다. 내가 이사할 때에는 주인은 집을 팔기에 내놓은 상태였으나, 오랫동안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비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전 집의 경험을 생각하면서 전세기간을 4년으로 하는 계약서를 체결했었다. 내가 입주하자마자 새주인으로 바뀌었고, 새주인은 내 계약을 인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새주인이 자신이 살아야겠다며 집을 당장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2주일 이내에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전 집의 주인과 이곳 집의 주인은 모두 동일한 어투와태도로 나를 대했다. 마치 세입자의 사정이나 계약서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했다. 강도는 전주인보다 현주인이 더 심했다. 이들 남자들은 혼자 사는 여자라 내가 만만해보였나싶었다. 그래서 아는 지인의 남편을 시켜 날 대신해 주인과 통화하도록 했다. D면에서도 이사나가는 날도, 내 주변에는 지인 남자가 옆에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동안 파손된 것은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단단히 벼루고 서울에서 내려왔던 집주인은 친구 덕분인지 군소리없이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계약서 상 임대차 기간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이사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보는 것을 더 강조하고 우겨대며 화를 내고 있었다. 지인이 대신해서 집주인과 통화를 했고, 당장 비워주기는 힘들고 내년 봄에나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전달했다.
이사하는 날이 되자 두려웠다. 분명 무슨 이유를 찾아내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보상을 요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역에서 만난 지인과 남편이 왔다. 예상한대로 주인은 내가 이사를 하고,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보증금의 일부를 남기라고 했다. 이에 지인의 남편이 화를 냈고 거칠은 말을 했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가 되었다. 친구는 내 얼굴이 창백해졌다고 한다. 이사를 하는 것이 임차인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다시 깨달았다. 이삿짐을 싸는 노동때문이 아니라, 임대인의 일방적 태도에, 그들은 의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난 내가 혼자여서 그런가 싶다.
언니가 말하는 좋은 곳이란 지금보다 2 배 이상의 높은 전세금을 감당하고, 가난한 티가 나지 않는 곳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좋은 곳이란 사람들이 좋은 곳이다. 혼자 사는 나이든 여자라고 마구 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만약에 험한 일이 있을 경우에, 최소한 늦게라도 날 찾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