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방문 후 중앙시장 안 보리밥집을 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에는 70대의 남자와 50대의 여자가 작은 식탁을 사이로 마주보고 앉아 있다. 식탁에 맥주병을 서너개 놓여있고, 가운데에는 달걀프라이 접시가 놓여 있다. 소박한 차림이다. 남자는 얼굴이 불그레 하다. 마주편에 앉은 여자는 머리 뒤퉁수가 한껏 부풀려 있다. 누가봐도 둘은 서로 추파를 던지는 사이였다. 여자의 코맹맹이 소리와 웃음소리, 남자의 과장된 웃음에는 눈에 띄는 원색적인 추파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젊은 여자를 한번 홀리겠다는 허세의 목소리와 자세가 투박하게 새어나왔다. 식당여주인과 여자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달랑 달걀프라이와 소주만을 시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준 것을 보니. 좋은 식당도 카페도 아닌 낡은 식당에서 데이트하는 이들, 가난한 중장년의 급한 마음이 보였다.
여자가 자기 아들이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애를 대학 마치게 하고, 전세를 내어 독립해서 내 보냈으니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덧붙였다. 남자는 결혼이 남아있지 않았냐고. 결혼해야 부모의 의무가 다한게 된다고 점잖게 말했다. 여자가 '그래요'하며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한다. 남자는 '그럼 내가 도와줄께' 한다. 여자는 그 말이 허세인 거짓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덥석 받았다. '정말이요. 약속이에요' 했다. 남자는 '아이고, 여기 종이에 서명을 할까'하면서 허허 웃었다. 아직은 서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보아 관계가 오랜 동안 진행된 것 같지 않다.
계산을 하는데, 남자가 현금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오만원짜리 한장과 일만원짜리 셋장 정도였다. 지불액이 일만오천원인데 이만원을 준다. 카드가 없는지 안보여주는 것인지. 카드가 없다면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거나,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을 지 모른다. 여자는 이만원을 내미는 남자를 향해 허벌레 웃었다.
외양으로 보면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꽃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풀린 머리며 목소리며...더구나 남자에 비해 어린 나이. 그런데 남자는 어떤가? 지금 이 상황만을 보고 내가 상상하기에는 남자도 여자를 이용한다. 젊은 여자와의 관계를 위해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 여자와 남자 모두 상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뻔해 보인다. 만약 남자는 젊은 여자와의 잠자리를 원하는 것에 그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서 안정을 원하고, 남자는 안정을 줄 생각이 없다면? 남자는 만족을 하지만 여자는 얻는 것이 없다해도 진정 여자를 꽃뱀이라고 욕할 수 있는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 연애에 서투른 장년노년의 로맨스일지 모른다. 두 분은 설레는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저 모습은 서로 밀당을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의 밀당이,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인 것은 내 편견의 결과일 것이다. 젊다고 서로 따지지 않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모, 경제적 능력 등을 따진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는 꽃뱀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입장에서 정확히 의사를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쿨하다고 말한다.
어색한 만남을 이어가는 그들을 힐긋힐긋 보면서 나는 보리밥을 먹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췰까?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시장에 나와서 혼자 밥을 먹는 여자, 쿨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청승맞고 안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서로 쿨하게 보지 않으면서 쿨하게 서로 일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