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두근두근 홍콩 여행 첫째 날
홍콩 도착.
입국심사 줄은 길었지만 긴 줄 대비 심사는 초효율로 진행됐다.
무심하게 내 정보를 확인한 뒤 여권을 거의 던지듯 건네어주는 시크함까지 보여주었다(ㅎㅎ).
입국장에서 예약했던 버스카드를 수령하고 곧장 공항철도를 타고 홍콩역으로 이동했다.
캐리어 하나 없이 각자의 등에 배낭 하나씩, 가방 2개만 달랑 들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수하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는 뿌듯한 이야기. 데헷.
역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홍콩 특유의 건물들의 위엄이 우리를 맞이했다.
꽤 예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무간도>에 나온 건물과 분위기를 내가 직접 보고 있다니.
초 거 대함+빼 곡 빼곡한 건물들의 위엄에 놀라기도 전에 우리는 진풍경을 마주하고 압도당했다.
홍콩역 외부와 모든 육교, 건물 틈새 곳곳에 박스와 텐트를 치고 수 백, 아니 수 천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들 모두는 여성이었다)이 돗자리 혹은 박스를 깔고 앉아 식사를 동반한, 사실상 노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서울역 등에서 늘 보아왔던 노숙과는 규모와 차원이 달랐다. 노숙인이라고 하기엔 행색이 꽤나 말끔했으며 삼삼오오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분위기였다.
기자(였던) 본능이 발산된 우리는 이 풍경을 '현상'이라 정의했다. 이 현상은 어떤 현상일까, 이 수많은 여성들은 왜 거리로 나왔다. 폭풍 검색을 해 본 결과로 말하자면,
이들은 홍콩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로 대부분은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온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주 6일 고용주의 집에서 살면서 일하는데, 일주일에 하루(일요일) 휴가가 주어지지만 같은 날 고용주 역시 휴일이기 때문에, 고용주인 집 집주인 역시 집에서 쉬어야 하기에 집을 비워야 한다.
천정부지인 홍콩의 집값 탓에 별도의 거처를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이 일제히 홍콩 중심부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마침 일요일에 홍콩역으로 떨어지게 되어 우리가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인데,
명품 매장들과 금융 센터가 즐비한 홍콩 센트럴역의 중심부에 수많은 이들이 상자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가 곧 마주할 현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며..
이 현상을 보고 아이템을 발제하고 야마를 잡고 보고 절차를 거치고 기획안을 제출한 뒤 취재하고, 5~6차례에 걸쳐 보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지만.. 곧 글로 다룰 <내 인생 F5 버튼>에 따라 내 인생에서 기자와는 작별했기에, 생각은 생각으로 고이 접어 정리해 두었다.
배꼽시계가 울릴 시간도 지난 데다 타국에 도착하니 우리는 매우 시장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선 우리의 배에는 겨우 쌀국수와 마파두부 조금밖에 채워져 있지 않았다.
어디서든 내 입맛에 꼭 맞고 나의 현재 몸 상태 마음 상태 식욕 상태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는 데다 + 그에 맞는 식당을 골라내는 능력을 지닌 그가 찾은 식당으로 향했다.
전날 밤 몸살 기운 '발단' 단계에서 시작해 아침부터 오전까지 '전개'를 거쳐 이 즈음 나의 몸살은 '위기'에 가까워 있었다. '제발, 제발, 나 여행 중이야. 그냥 여행도 아니고 퇴사 기념 여행이야. 제발, 제발, 부처님 하느님 예수님 알라신님 산신령님 전국의 모든 신들이여 세상의 모든 신들이시여 하늘이시여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몸은 '응 너 몸살이지롱ㅋ'이라고 나를 약 올리는 듯했다.
쓴 침과 열 기운과 감기 기운을 안고 걷는데,
걷는데..
도무지 평지라는 것이 없는 길이었다. 분명 구글맵이 걸어서 20분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계단 20분이었니? 구글 맵아. 구글 맵아!
알고 보니 바로 옆에 홍콩 센트럴역의 명소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두고 우리는 '쌩 계단'을 등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밥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홍콩 뚜벅이 여행의 기본은 계단에서 시작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여기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인가 봐~ 푸하하" 하며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대였음에도 자리가 없었다. 조금 기다리니 딱 한 자리가 났는데, 외국인 커플과 마주 앉고 식사를 해야 했다는....
바나나 스무디, 연어 샌드위치를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딸기, 그래놀라, 바나나스무디의 식감 모두 생각난다. 역시 그의 맛집 픽은 실패가 없다.
배를 채우고 이날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났다. 근처 '소호거리'를 둘러보고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방금 먹은 음식들이 식도에서 머물며 안 내려감+ 두통+ 아랫배 욱신거림+온몸 근육통+발열까지
몸살 '절정'이가 찾아온 것이다.....
여행지에 막 당도해서 한창 관광을 시작할 가드를 올린 그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정말 미안했다. 그렇지만 정말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소호거리를 겨우 20~30분 돌아보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오는 내내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와야 했을 정도로 몸이 아팠지만
사진 앨범을 보니 거리에 뜬금없이 불쑥 위치한 절(?) 사원(?)에서도 사진을 찍었고,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건물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미안함+죄책감+아쉬움으로 계속 장난을 거는 나의 마음을 알아준 그는 내내 예쁘게 웃어주었다. 고마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홍콩 한복판에서 여보가 토할까 봐 진짜 식겁했어"라고 했다는 웃픈 썰....ㅎ
숙소에 몸을 뉘이니 다시 몸살기운이 올라왔다.
스스로 방구석 의사, 약사라고 자부하는 그가 야무지게 챙긴 약들을 야무지게 먹고 눈을 붙였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를 위해 그는 광둥어와 영어와 아~ 에~ 으~ 를 덧붙인 음성언어와 각종 몸짓언어를 동원해 온풍기까지 대여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홍콩에 가기 전부터 "나 홍콩에서 늦게 잘 거야"라고 호언장담했었더랬다.
평소 밤 9~10시 사이 취침, 새벽 4~5시면 기상해 북적북적 제 할 일을 하고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습관이 있기에
홍콩에서만큼은 낮잠을 오래 자서라도 늦게까지 깨어있겠어, 반드시 야경을 보고 맥주를 마시겠어!!
라고 다짐했지만,
시원한 맥주에 야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자고 계획하고 기대했지만,
우리는 여행 첫째 날 한식 가게에 가서 닭칼국수와 곰탕을 주문해 먹었다.
편도선이 따끔거리고 속이 좋지 않았다. 곰탕에 들어있는 고기 2~3점을 겨우 넘겨냈다.
그는 매우 속상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쏟아냈다.
"사실 며칠 전에 퇴사하고 쉬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겠다고 여보가 나한테 뭔가 보여줬었잖아. 그걸 보고 할 말이 없었어.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퇴사를 적극 독려한 이유는 여보가 정말 쉬었으면 했기 때문이거든. 근데 쉬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겠다고 보여준 그 엄청난 리스트들을 보는데 사실 걱정이 되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탈이 났어. 쉬는 법도 알아야 하고 여보는 지금 쉬어야 해"
맞는 말이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많은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아직 3박의 일정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식사를 마친 뒤 곧장 숙소로, 그는 야경을 보러 강가? 해안가?로 흩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던 때가 마침 해가 뉘엿뉘엿 지던 시간대라 어렴풋이나마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야경을 보러 간다던 그는 "여보랑 같이 없으니까 재미없어서 일찍 왔다"며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기절하듯 잠들며 하루 마무리.
첫째 날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