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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18. 2018

타인의 시선, 그게 뭐가 중요해?

첫째 아이가 17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야심 차게 사용하게 된 육아휴직. 제대로 육아 한번 해보겠다는 의욕이 불타올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걱정거리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아이와 단 둘이, 문화센터에 가는 것이었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건만 "월요일, 목요일 문화센터 수강신청해놨으니까 시간 맞춰서 잘 다녀~" 라고 말하는 아내...


그동안 아내 없이 아이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장소가 대부분 '집'이었다는 게 당시 나의 한계였다.


딸이랑 둘이서만 나가라고...?
그것도 엄마들로
북적거리는 문화센터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곳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몰랐다면 별 걱정 없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1. 첫 문화센터의 추억


육아휴직 전, 모처럼 휴가를 냈던 날 문화센터에 따라갔던 적이 있었다. 아이가 돌이 채 되기도 전의 일이었다. 문화센터는 아이 1명 당 부모 1명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휴가를 자주 내지 못하는 나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던 터라 강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함께 들어갔다.


아빠는 나 혼자밖에 없네...?


슬슬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수업이 시작됐다. 귀엽고 해맑은 동요가 흘러나왔고, 거기에 맞춰 율동을 하거나 각종 놀잇감을 활용해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아이가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도 잘 하지 못했던 시기.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아이와 놀아주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어렵다기보단 어색하고 남들보기에 뭔가 뻘쭘하기도 한, 그런 일이었다.


엄마들, 아이들의 무리 속에서 그 분위기에 금세 적응할 수 없었던 나는 얼굴이 후끈거리고 민망함에 등에선 땀까지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아내가 그런 나를 보더니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졌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2. 많이 해보지 않아서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이 많고, 남들 앞에 나서는 일도 꺼렸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끼면, 누가 딱히 뭐라 하지 않아도 얼굴이 막 빨개지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들만 있을 게 뻔한 문화센터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아이와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래, 한번 잘 다녀보자. 아빠가 나 혼자면 어때. 사실은 다들 나를 부러워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당당해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아이와 둘이 꼬박꼬박, 빠짐없이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몇 주간은, 주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을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혼자 유모차 끄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어색해보이진 않을까?'

'아기띠를 멘 모습이 우스워보이진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내가 많이 해보지 않아서, 스스로 어색해 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 아빠 육아휴직 4개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그렇게 문화센터의 시간으로 '한 학기'가 흘렀다.


아이와 둘이 외출하는 것도 익숙해졌고, 엄마들이 가득한 문화센터도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 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센터에 가지 않는 날이면 간식거리를 배낭에 잔뜩 넣어 아이와 함께 한강 공원, 동물원에 소풍을 가기도 했다.


평일 오후,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텅빈 공원을 아이와 함께 누비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2017년 9월 어느날 @ 한강공원

아빠 육아휴직 4개월. 그 이후, 아이와 둘이 외출할 때 더 이상 남들 눈치를 보지 않게 됐다. 


'남자 혼자 아기띠 메고 돌아다니는 게 어때서?'

'남자 혼자 유모차 끌고 마트에서 장 좀 보면 어때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육아를 하는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동시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고 갈 수 있는 곳의 범위도 넓어졌다.

 



정작 사람들은 그동안, 나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아이가 아빠랑 둘이서만 나왔을지, 아니면 엄마는 잠깐 화장실을 간 것일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한들, 그게 얼마나 갈까. 각자 자기 일 하느라, 갈 길 가느라 다들 바쁠 텐데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 너무 신경쓰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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