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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07. 2018

'훈육'에 대해 생각하다

육아휴직 당시, 아이와 단둘이 외출하는 일이 많았다. 일주일 중 이틀은 문화센터에 가는 날이었고, 다른 날에도 집에만 있기 지루해서 툭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만큼 외식도 자주 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두 살배기 꼬맹이와 함께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매번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아이와 외식을 하기 위해, 가방 속에 항상 '놀거리'를 챙겨 다녔었다. 그런 것 하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꽤 크다. 아이는 순순히 밥을 먹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놀잇감 챙기는 걸 깜빡하는 날이 있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나.


하루는 문화센터를 마치고 집 근처 식당에 갔었다. 사람들이 몰릴 점심시간이라 아이가 또 시끄럽게 떼쓰면 어쩌지, 부담이 컸다. 그나마 아이가 평소에 투정 부리지 않고 잘 먹던 메뉴, 카레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잘 먹지를 않았다.


'너무 뜨거워서 그러나?'

'카레가 좀 맵나?'


밥을 식히기도 해보고, 카레 맛도 다시 확인한 뒤 먹여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방을 뒤져봐도 아이 손에 쥐어줄 만한 장난감도 딱히 없었다.


지루함이 극에 달했는지 이내 소리를 지르더니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기 시작한 첫째.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봤다. 왼쪽에 있던 스마트폰이 먼저 만져졌다.


'아... 스마트폰은 안돼...'


오른쪽 주머니엔 지갑이 있었다. 크기가 작아 뒷주머니보단 앞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작은 카드지갑이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카드지갑.


'이거라도 줘 봐야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연기를 시작했다.


"이거 봐~ 이 사람 누구야~?"


내 주민등록증이었다.


어리둥절 하는 것 같더니 금세 "아빠야~"라고 말하는 첫째. 알아봐 줘서 고마웠다. 8년 전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어쨌든, (나 같지 않은) 내 사진이 찍힌 신분증 하나로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 아이는 더 신기(?)한 게 없는지 내 지갑을 통째로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당시 카드지갑에는 체크카드, 신분증, 각종 쿠폰 등이 들어있었다. 철저히, 기능에 충실해 사용하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아이 손에 들어가는 순간, 지갑 본연의 목적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그건 더 이상 지갑이 아니었다. 장난감이었다.


첫째는 지갑에 꽂혀있는 카드들이 신기했나 보다. 하나하나 빼서 식탁 위에 올려놓더니 금세 다시 꽂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뺐다 넣었다, 무한 반복했다. 카드를 지갑에 넣고 빼는, 나에겐 쉽고 단순한 행위가 아이에겐 어떤 흥밋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흐뭇해하며 밥을 먹이고 있었는데, 아이이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카드를 하나씩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분명, 고의였다.


카드가 더러워지는 게 싫었던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주울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밥 먹이는 것도 먹이는 거지만, 그런 장난은 그만 치자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아이를 혼내고 싶은 욕구가 막 들끓었다.


그런데, 일단 참아보았다.


카드가 뭔지, 지갑이 뭔지 아이가 알기나 할까. 아이는 그저 재미있게 노는 것일 뿐, 장난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당시는 아이와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을 때였다.


식당 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아이가 지갑을 가지고 놀게 놔두기로 했다. 아이와 불필요하게 실랑이 벌이지 않을 수 있었다. 카레 한 접시도 뚝딱, 함께 맛있게 먹었다.


카드, 까짓것 그게 뭐라고. 땅에 떨어지면 좀 어때. 집에 가서 한 번 닦으면 되지 뭐.




육아를 하다보면 비슷한 일을 많이 겪는다.

물티슈를 다 뽑아 놓는다든지...

한두 번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무리 부모라도 욱하기 쉽다. 때로는 감정이 앞서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엄하게 주의를 준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아이가 하는 행동이 정말 금지해야 할 일인지. 내가 과잉 통제하려는 건 아닌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어도 사실, 별 문제 없는 경우가 많다. 애들이 뭘 해봤자 얼마나 큰 일을 벌이겠나. 단지 내가 뒷수습 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는 것일 뿐이다. 내 감정이 그렇다고 해서 매번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기만 하면 나중에 정말 반항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아이의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해줘야겠다.


또,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 조절 능력을 그대로 배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계속해서 화를 내면, 아이는 감정 조절 방법을 보고 배울 모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너와 다르다'는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 오히려 부모로서 권위가 더 선다고 한다. (참고 :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의 모든 행동을 감정적으로 제지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게 '신기해서' 그러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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