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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23. 2018

어린이집 첫 오리엔테이션 갔던 날

딸에게 보내는 편지 #1

어제 아빠와 엄마는 너와 같이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단다. 월요일이었지만 휴가를 낸 아빠도 함께 갈 수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손을 잡고 아파트 앞 놀이터를 지나 어린이집으로 향했어. 그때 너는 어린이집 보다, 바로 앞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  


그러고 보니 현관문을 막 나설 때, 너는 초저녁 산책을 나가는 줄로만 알았는지 신이 나 보였던 것 같기도 하구나. 어제는 춥기도 했고, 오리엔테이션 시작 시간도 다 되어 가서 엄마 아빠는 너의 손을 좀 더 힘 있게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너는 미끄럼틀 타는 걸 정말 좋아했단다. 놀이터에 가면 지칠 줄도 모르고 꺄르르 웃으면서 수십 번을 오르내렸었지. 아빠는 '날이 좋을 때, 놀이터에서 원 없이 놀아주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와, 너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어리둥절하고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던 엄마, 아빠와는 다르게, 너는 어린이집 거실에 있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보고 신기한 듯 연신 "물고기! 물고기!"하고 외쳤었어.


미끄럼틀에 이어 물고기들도 뒤로 하고 나서야 네가 1년 동안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들을 수 있었어. 너를 돌봐주실 선생님들과 인사를 했고, 엄마 아빠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지.


1시간 남짓, 조금 지루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너는 어린이집에서 챙겨준 귤과 빵을 먹으면서 얌전히 잘 기다려 주었어. 가끔은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기도 하더라. 정말 이해를 하면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어.


긴 설명회가 끝나고, 네가 지내게 될 방으로 들어갔어. 널 가장 가까이서 돌봐주실 선생님 한 분, 그리고 함께 지낼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지.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 아침 몇 시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 낮잠 시간은 몇 시인지. 다들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듯했어.


3월부터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엄마는 특히,  8시가 되기도 전에 너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에 걱정이 많은 것 같았어. 사실 걱정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장난감들을 손에서 쥐고는 놓을 줄을 몰랐어. 그래도, 처음 보는 친구 옆에서도 마냥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단다.


어린이집을 나서면서도 너는, 선생님들에게 손을 흔들고 웃으며 인사를 했었지. 그런 네 모습이 그저 기특하고 예쁘기만 했던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던지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어.


이제 이틀 뒤면 새로운 곳에 첫 발을 내딛게 되는구나. 어린이집 어항 속 물고기도, 장난감들도 금세 익숙해지겠지만 친구들과 보내게 될 시간은, 하루하루 새로울 거라고 믿어.


두 번째 생일이 오기도 전에 너를 낯선 곳에 데려가게 돼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엄마 아빠는 그만큼,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할 거야.  


2018년 올 한 해도 행복하자.


201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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