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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25. 2018

어린이집 첫 등원하던 날

딸에게 보내는 편지 #2

네가 3월 2일부터 어린이집에 가기로 결정됐을 때, 엄마와 아빠는 걱정이 됐었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엄마 아빠가 네 옆에 있어주지 못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다행히 아빠가 어제부터 1주일 휴가를 낼 수 있게 돼서 엄마도, 아빠도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어.


3월 1일이 휴일이었으니까 실제로 아빠는 11일을 쉬게 됐는데 다시 육아 휴직을 한 것처럼, 이게 원래 아빠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어. 아침 일찍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를 너와 함께 배웅했을 때 특히 그랬던 것 같아.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엄마가 너에게 "오늘 어린이집 잘 다녀와~"라는 인사를 했던 거였지.


우리도 나갈 준비를 하고 9시 20분쯤 어린이집으로 향했어. 혹시나 네가 낯설어하지 않을까 걱정됐던 아빠는 걸어가는 동안 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단다.


"오늘 아빠랑 어린이집 가는 날이지?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다 오자~ 어린이집~"


그러자 너는, 아직 발음이 서툴렀지만 "어니니칩!"하고 맞장구를 쳐주었어.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 들어섰는데 아침 햇살이 오랜만에 따스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같이 먼지로 뒤덮였던 하늘도 오늘만큼은 깨끗해 보였지. '아빠라도 네 옆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그런 기분 탓이었을까.

날이 좋아서인지 너는 며칠 전보다 놀이기구에 더 관심을 보였어. 시소에 잠깐 앉는가 싶더니 바로 옆에 있는 그네로 가서, 타고 싶다며 줄을 잡고 흔들어댔지. 조금은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아빠는 너를 그네에 앉혀줬어.


몇 달 전만 해도 네가 그네를 탈 때면 혹여나 뒤로 넘어질까 봐 아빠가 꽉 잡아줬어야 했는데, 이제는 제법 중심을 잡고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었더라. 또 한 번 네가 훌쩍 커버렸음을 느꼈단다.


'어린이집 가서도 즐거워하는 네 표정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너와 함께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어. 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며칠 전 엄마와 함께 갔을 때와는 다르게 너는 조금 어리둥절해 보였어. 어항 속의 물고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처음 오는 것처럼 낯설어하는 것 같았지. 주춤주춤, 입구에 서서 섣불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너는 "아빠도 같이 갈 거야~"라는 아빠의 말에 겨우 용기를 내는 듯했어.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갔어. 방 안에는 담임 선생님과 너와 같은 달 태어났다는 남자아이 한 명,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가 있었지. 모두 너를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너는 부끄러웠는지 아빠 뒤에 숨어버렸어. 그리고 한참을 아빠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단다.


아빠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이런저런 장난감을 너에게 보여줬는데, 너는 쉽게 받아줄 줄을 몰랐지. 매트에 그려져 있던 뽀로로 친구들도 그날만큼은 너의 관심을 끌지 못했어.


그러다 큼직한 레고 블록들이 아빠 눈에 들어왔어. 집에서 레고 블록 몇 개만 손에 쥐어주면 흥미진진한 얼굴로 한참을 혼자 놀던 네 모습이 떠올랐어. 집에서 하던 대로, 블록을 높이높이 쌓아 너에게 보여줬더니 조심스럽게 블록을 하나둘씩 집어 들더구나. 아빠 무릎에 앉아있던 너는 점점 아빠 곁을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어.


선생님께서 별 모양이 그려진 스티커를 주셨을 때, 너는 좀 더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 네가 신고 있던 양말을, 노는 데 방해가 된다는 듯 스스로 벗어 버렸거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양말부터 벗곤 했던 너는, 최근엔 차에 타서도 신발과 양말을 네 손으로 벗어던지기 시작했어. 이제 보니, 양말을 스스로 벗는다는 건 어쩌면 네가 있는 그 공간을 조금은 편하게 느낀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너는 스티커를 바닥에 붙이며 놀다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다른 스티커 종이를 나눠주기 시작했어.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셨어.


"아이가 다른 친구들한테 나눠주는 걸 잘 하네요. 보통 3세 아이들은 자기 걸 지키는 성향이 더 강하거든요."


아빠와 너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신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아빠는 네가 참 기특하고 의젓해 보였단다.


잠시 뒤 아빠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생님께도 하나 붙여드릴까?"라고 했더니 너는 별 스티커 하나를 선생님 손목에 붙여드리고는 웃어 보이기까지 했어.


그 사이 다른 아이들도 도착했고, 방 안은 금세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 차게 됐어.


아빠는, 많이 밝아진 네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바빴어. 네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아빠는, 네가 예쁘게 웃는 표정을 담으려 평소보다 더 많이 애를 썼던 것 같아.


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도 한 병 시원하게 마셔버리고, 너는 본격적으로 방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어. 그때, 네가 혹시나 아빠를 보면 아빠에게 올까 봐, 그러면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아빠는 슬금슬금 뒤로 자리를 옮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시간이 다 되어 이제 가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너는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어. 아니, 사실은 네가 어린이집에서 잘 노는 걸 조금 더 보고 싶었던 아빠 마음이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다음 주에 보자, 인사를 하며 한 명씩 어린이집 가방을 나눠주셨어. 새것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가방을 받아 들고, 너는 기분이 좋았던지 "가방! 가방!"하며 아빠에게 왔어. 아직 너에겐 커 보였지만 아빠는 가방을 멘 네 모습이 보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끈을 네 어깨에 걸어주었단다.

평소 몸에 무언가 걸치는 걸 싫어하던 너였지만, 앞으로 네가 가지고 다닐 가방이란 걸 알았는지 웃으면서 가방을 멘 채로 어린이집을 나섰어.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지.


어린이집에 머물었던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너에겐 꽤 고된 일이었던 같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평소보다 일찍 낮잠에 들었는데, 한 시간 반쯤 자고 일어나더니 한참을 울더라. 그런 너를 달래주기 위해 안아주었는데, 너는 금세 다시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어.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자고 일어날 때까지 아빠는 너를 내려놓지 않았었어. 그냥, 그날따라 새근새근 잠을 자던 네 숨소리를 오래 듣고 싶었던 것 같아.


편지가 좀 길었네. 아빠가 어제 일을 조금 더 많이,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다음 주는 어떤 일이 있을까. 네가 잘 있어준 덕분에 아빠는 이제 걱정보다 기대가 돼. 남은 일주일, 네가 잘 적응할 수 있게 아빠도 노력할게.


2018.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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