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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31. 2018

어린이집 첫 홀로서기

딸에게 보내는 편지 #4

오늘은 너를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혼자 보낸 날이었어. 어린이집으로 가기 전, 아침부터 아빠는 불안한 마음에 너에게 계속 얘기를 했단다.


"오늘도 어린이집 가는 날이지? 그런데 오늘은 어린이집 갔다가 아빠는 낭콩이랑 빠빠이 하고 집에 잠시 올 거야~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빠 금방 다시 올게, 알았지?"


그런데 아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는 얼굴을 찌푸리며 칭얼댔어.


"아빠아아~ 힝..."


그냥 "아빠랑 어린이집 가자~"라고만 얘기해주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지. 아빠는 그런 네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반복해서 너에게 말했어.


너는 "네."라고 대답하진 않았지만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 아빠의 말을 받아들였던 걸까.


아빠는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너를 더 예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네 옷을 골랐던 것 같아. 분홍색 꽃무늬 옷을 너에게 입혀주고, 함께 집을 나섰어.


9시 45분쯤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너는 가장 먼저 눈에 띈 그네 앞으로 뛰어갔어. 그리곤 아빠를 불렀어.


"아빠 타~ 타~"

"아빠 타라고? 아냐~ 네가 타야지~"


너는 기어이 아빠를 그네에 앉히고는 웃으면서 밀어주기까지 했어. 다른 사람이 봤다면 얼마나 웃긴 장면이었을까. 아빠는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너를 그네에 앉혔어.

그네를 조금 타는가 싶더니 너는 갑자기 미끄럼틀로 뛰어갔어. '오늘은 조금 여유 있게 나왔으니까 몇 번 탈 때까지 기다려 줘야겠다'라고 아빠는 생각했단다.


그런데 미끄럼틀을 딱 한 번 타고서는, 어쩐 일인지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어린이집 입구를 향해 뛰었어. 마치, 오늘만큼은 아빠에게 떼쓰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보였지. 정말 너는 알았던 걸까.


선생님이 현관문까지 나오셔서 너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아빠는 신발을 벗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 너의 눈을 보고 말했어.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선생님도 잘 해주실 거야. 아빠 집에 갔다가 다시 올게. 빠빠이~"


울지도, 웃지도 않고 아빠를 보고 있던 너는 덤덤하게 아빠에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춰줬어. 그리고는 선생님께 안겨서 아빠가 뒤돌아서 나올 때까지 지긋이 아빠를 쳐다보기만 했단다.


그 눈빛은 뭘 말하려는 거였을까.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아빠는 조금 후련함을 느끼다가도, 너의 표정이 눈 앞에 어른거려 기분이 묘해졌어.


한 시간 후, 너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다시 찾아갔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아빠는 복도에 서서 큰 창문 너머로 너를 봤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지.


그러다 아빠가 왔다는 선생님 말씀에 너는 창문 밖에 서있던 아빠를 발견하고는 웃어주었어. 그런데 "이제 집에 갈까?"라는 아빠의 말에 너는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아.  


내일은 네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날 거야. 친구들과 헤어지며 아쉬웠던 만큼 내일은 더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길 바랄게.


오늘, 울지 않고 잘 있어줘서 고마워. 내일도 행복하자.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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