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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Nov 12. 2018

그래도 너는, 아빠에게 웃어주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6

<하루 5분 엄마 목소리>, <하루 5분 아빠 목소리>라는 책이 있어.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의 직장 동료가 선물해준 책이었지. 임신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너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라는 의미에서.  


이 책에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여러 편의 동화가 담겨있어. 그걸 엄마와 아빠는 한 편씩, 뱃속에 있는 너에게 읽어주곤 했단다.

처음 이 책을 네게 읽어주던 날이 기억난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가 너에게 갖은 기교와 연기를 섞어가며 책을 읽어주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

네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엄마 아빠 목소리를 네가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정말 어색했었지.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어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그 자체로도 익숙지 않은 광경이었어.

사실 그보다도, '엄마 아빠'라는 역할이 당시 엄마 아빠에게 그만큼 낯설었던 것 같아.

하지만, 언제까지 어색해 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지. 엄마 아빠는 뱃속에 있는 너에게 '무엇을 더 해주면 좋을까'를 생각했었어.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고, 자기 전엔 잘자라고 인사도 해주고, 그랬단다.


요즘의 엄마, 아빠는


그런데, 요즘 엄마 아빠는 너라는 존재에 대해 익숙해졌던 걸까. 너에게 두었던 관심을 조금씩, 엄마 아빠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어.


제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었던 엄마 아빠는 최근, 하루씩 번갈아가며 밖에 나가 저녁에 운동을 하기로 했어. 네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명만 네 옆에 있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물론 너에게 좀 더 멋진 아빠, 예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엄마', '아빠'로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가꾸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그런데, 요즘의 너는


어제는 엄마가 운동하러 가는 날이었지. 그런데 나갈 준비를 하던 엄마를 본 너는 유독, 평소보다 더 애처롭게 울었어. 그리고 말했어.


"같이 가~ 같이 가~"

엄마는 그런 너를 보고 '가지 말아야 하나' 망설였는데, 괜찮다고, 그냥 빨리 나가라고 하는 아빠의 말에 겨우 현관문을 나섰단다.

사실, 지난주 아빠가 저녁에 나갈 때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 그때 아빠는 '아... 애기 자는 시간인데, 내가 뭐하자고 이렇게 아등바등 나가서 운동을 하나...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저렇게 우는데...' 생각하다가도 금세, '괜찮겠지...' 하고 넘기고 말았지.

그런데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아빠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았어. 엄마는, 이제 운동을 가지 말아야겠다고 아빠에게 말했지.

그 말을 듣고도 아빠는, 이렇게 생각을 했어. 그리고 엄마에게도 말했어.

"나갈 때 잠깐 그랬지, 자기 나가고 나서 안 울고 잘 잤어~"

참 나쁘지. 타들어가는 엄마의 속도 모르고, 아빠는 그렇게 얘기했단다. 너도, 괜찮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요즘 너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와서, 오후 내내 엄마가 올 때까지 울기만 한다는데,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아니 알았지만, 네가 아닌 아빠를 위한 뭔가를 더 생각했던 거야.


그래도 너는


오늘, 아침 8시도 채 안 된 시각, 여느 때와 같이 아빠는 직장으로, 너는 엄마와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이었어. 빠듯한 시간에, 아빠는 너와 어린이집 앞까지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아 먼저 인사를 했단다.


그때, 너는 활짝 웃으면서 아빠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어. 아빠가 네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 모습이 또, 어찌나 예쁘게 보였던지.

아빠는 계속 뒤를 돌아보고 웃는 너에게 얘기했어.


"앞을 보고 걸어야지~ 조심~"

하지만 사실 아빠는, 미안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단다. 아빠가 요즘 너에게 어떻게 했든, 너는 아빠에게 웃어주었으니까. 한결같이.


아빠는,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하루 5분 아빠 목소리>를 처음 읽어주던 날을, 그 날의 어색했던 아빠의 목소리를, 너를 생각하던 그때의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되새겨야겠다고 생각했어.


항상 아빠를 보고 웃어주어서 고맙고, 또 미안해.


2018.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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