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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05. 2018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엄중한 임무가 하나 있었다. 아내에게 첫째 딸이 최대한 다가가지 못하도록 '밀착 마크' 하는 것. 둘째 임신 후 아내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일에야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손이 덜 가는 편이지만,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말에는 부담이 꽤 컸다. 특히나 '미운 세 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던 첫째 딸을 하루 종일 돌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더욱, 나의 책임이 막중해졌다.


엄마한테 가서 귀찮게 칭얼대지 않도록 놀아주는 일, 밥 먹이기, 청소나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 저녁에 씻기고 재우는 일 등등.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내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1.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그 옆에 누워 나도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문득 첫 육아휴직 때 생각이 났다.


아이가 갑자기 울거나, 밥 먹기를 거부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던 기억들. 어떻게 놀아줘야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그때와는 달리, 육아휴직 후에는 요령도 많이 생겼고 아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돼서 육아가 한결 능숙해졌음을 감히 느꼈다. 그리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 출산과 함께

'자연스레' 나눠지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

그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일까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일반적으로도 그렇듯이 아내가 먼저 출산 휴가에 이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남녀 동시 육아휴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갓난아이와 아내를 뒤로하고 다시 전쟁 같은 일상, 직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pic_parlance, 출처 Unsplash

그러다 보니 나는 육아에서 조금씩 멀어졌고 가사 노동은 아내의 것이 되어갔다. 잦은 야근으로 나의 퇴근 시간이 불규칙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갈 때쯤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못했다면, 그런 추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아내, 아침 일찍 직장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나의 모습은 점점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갔고 그렇게 각자의 역할이 굳어지는 듯했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육아와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남편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 출산 이후 주말에도 출근하면서 정말 바쁜 일상을 보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부부들이라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눠진다는 것.  

그건 과연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인 걸까.


#3. 당연하지 않은 일인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있을 때.
그때가 아빠 육아휴직의 '적기'가 아닐까.


집안일을 포함한 육아는 확실한 '노동'이다.


'그래도, 육아하면 어쨌든 집에 있는 거잖아. 그럼 직장보다 편한 거 아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주일, 아니 하루만이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 보길 권한다. 당연히 집안일도 같이 하면서. 얼마나 심신이 지치는 일인지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은 부부 중 어느 한 명이 전담하기에는 정말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부부가 분담, 또는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육아와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게 조금씩 익숙해지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 점점 몸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회사 일 때문에 멀리했던 육아와 집안일이 갑자기 여유가 생긴다고 해서, 주말이 된다고 해서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육아휴직 이후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스스로 느낄 때가 많다. 아내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들을 하게 된다. 참... 그게 당연한 건데도 4~5개월에 걸친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바뀌게 된 것이다.


아마도 휴직 기간 동안 육아와 가사 노동을 주도해본 경험의 결과가 아닐까. 육아든 집안일이든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부딪혀 느껴봤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해야 아내도 나도 다 같이 편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거다.


아직까지는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원하는 시기에 마음껏 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의 육아휴직'은 아빠들 개인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점이다.


육아와 가사의 중심에 서보는 경험.


아빠들이 그것을 더 늦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겪어보고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아빠 육아휴직'의 필요성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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