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으려면 많이 사야 한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창업자의 이야기다.
책 사는 게 꺼려지던 때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땐 몰랐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독서를 방해하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내 돈 주고 산 책이니 완독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산 지 두세 달 지난 책이, 다 읽지 못한 채로 책상 위에 놓여 있으면 감히, 다른 책을 사지 못 했다.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온다 싶으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렇게 조롱하는 듯했다.
누가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걱정이자, 내 마음의 소리였다.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책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 바뀌었기 때문이다. ‘완독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은 특히 큰 도움이 됐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더라도 다른 책에 관심이 생기면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살펴본다. 저자는 누구인지, 왜 이 책을 썼다고 하는지, 어떤 목차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결제. 하루 이틀 후 내 손안에 책이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한 달에 두 권 정도는 꾸준히 산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책상에 책이 쌓인다. 신기한 건, 김봉진 창업자의 말 대로 책이 많아지니까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보게 된다는 거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남는 시간 동안 잠시 앉아서 쉬고 있는데, 얼마 전에 사놓고 펼쳐보지 않은 책이 그날따라 눈에 들어온다.
목차를 보고 특히 눈에 띄는 부분으로 훌쩍 넘어가 훑어본다. 아니면 서문이라도 읽어 본다. 희한하게도, 사고 나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책에 금세 흥미가 생긴다. 책을 가방에 넣는다. 그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는다. 새로운 독서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다른 책에 손이 갈 수도 있다. 책이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책을 대한다. 책에 끌려다니지 않고 편하게, 온전히 나의 패이스에 맞춘다. 대부분의 책을 사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게, 돈을 아끼면서도 더 다양하게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순간, 대출 기한에 묶인다. 반납 전까지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가뜩이나 읽는 속도도 느린데 말이다.
또, 빌린 책이니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점도 신경 쓰인다. 마음껏 읽지 못하고 반납하게 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래저래 부담스럽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는 게 좋다. 와닿는 문장이 있는 곳은 접어두고 싶고, 가끔은 떠오르는 생각을 써두고 싶기도 하다. (아내는 책 지저분하게 보는 거 너무 싫다며 치를 떨지만ㅋㅋ) 그런 게 있다. 책 읽을 때만큼은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 세상에 책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기분 즐기는 맛에 책 읽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누군가 책을 잘 읽지 못하고 있다면 먼저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불필요하게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예를 들면, 완독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다거나, 책을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봐서 대출 기한에 쫓기거나,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두 가지부터 바꾸면 된다. 첫째, 빌려보지 말고 사서 본다. 그것도 많이. 닥치는 대로. (물론 용돈이 허락하는 한…) 둘째, 다 읽지 못한 책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김봉진 창업자는 다 못 읽으면 책장에 꽂아두면 된다고 했다. 특히 두꺼운 벽돌책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아주 좋다고. 완전 동의하는 부분이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다는 이동진 영화평론가도 그랬다. 가지고 있는 책이 1만 권이 넘지만 서문만 읽은 책도 있고, 사고 나서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도 있다고. “그런데 그것도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 부분만 찾아 읽는 것. 모든 것이 독서라고.
정신승리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이다. 그런데 이 신박한 사고의 전환이 어쨌든, 책을 읽게 만든다. 장담한다. 생각을 이렇게 바꿨을 때 책을 못 읽을 사람은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