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일정한 분량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욕심을 내볼 만하다.
또 다른 차원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고, 독서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일.
글쓰기다.
항상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책 한 권을 또 읽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내가 이 책을 정말 잘 읽은 것이 맞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시간이 많이 지났을수록 그 책에 대한 기억은 더욱 희미했다.
아까웠다. 그리고 뭔가 좀 억울했다. 안 그래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한 권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라니.
그래서 시작했다. 책 읽고 뭐라도 써보는 일. ’내가 이런 책을 읽었었구나‘, ’그 당시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남겨두기 위해서. 또 한편으론 ‘나 그래도 한 달에 한두 권은 읽고 있다’, ’나도 책 읽는 사람이다‘ 슬쩍 티 내기 위해서.
방법은 간단했다. 이렇게 했다. 먼저,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쭉 훑었다. 접어둔 부분이나 메모한 부분, 밑줄 그어둔 부분을 위주로 다시 봤다. 특히 인상 깊었다고 생각한 내용은 필사하듯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쓰다 보면 거기에 내가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걸 썼다. 정말 아무 말이나 막 끄적였다. 그럼 글 한 편이 나왔다.
정말 날것 그대로의, 어떤 검열도 거치지 않은 글이었다. 이후 ‘발행‘ 버튼을 누르면 끝. 어차피 익명으로 운영 중인 블로그이므로 공개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나중엔 취미로 운영하던 인스타그램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다. 블로그 글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일상툰의 형식이었다는 거다.
이렇게 독서 후 글쓰기를 해온 것이, 책 내용을 기억하고 소화해 내는 능력을 막 좋게 해 줬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난 여전히 활자울렁증에서 막 벗어난 독서 초보일 뿐.
그래도 ‘기록’이란 것이 그렇듯, 없는 것보단 있는 게 훨씬 낫다. 든든하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맛이 있다. 그런 소소한 재미가 1, 2주에 한 편이든 한 달에 한 편이든 계속해서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반응까지 더해진다면? 재미는 배가 된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하는데, 책에 대한 콘텐츠는 은근 소비가 많이 된다. 좋은 책을 추천받고 싶거나, 책 속 핵심 문장들을 빠르게 알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에게 있는 거다.
경험상, 특히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그랬다. 책을 소재로 한 일상툰을 올리면 다른 것보다 게시물 저장이나 공유 수가 더 많은 편이었다.
나 좋자고 시작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뿌듯했다. 좋아요 개수가 올라가는 만큼 기분도 좋았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순간인 건가. 아무튼, 그러면 또 글을 써서 올리기 위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선순환이었다.
알렉스 퍼거슨이 “SNS는 시간 낭비”라고 했는데, 이런 건 꽤 괜찮은 SNS 활용법 아닌가? (물론 하다 보면 여기저기 눈팅하느라고 시간 낭비가 되는 측면이 좀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온라인상에 공유하는 건, 책을 좀 더 꾸준히, 잘 읽기 위해 강력 추천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