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Nov 21. 2023

매일 일기를 쓰면 알게 되는 의외의 사실 3가지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내년이면 5년 차다. 이 기세라면 평생 일기를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작은 2020년 2월 무렵. 둘째 아이를 돌보기 위한 육아휴직에 들어갈 때였다.


‘휴직 기간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꼭 남기고 말겠다!’라고 다짐한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일기였다.

기를 쓰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매일 일기를 썼다. 그렇게 딱 1년 하고 홀딱 반했다.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었다니!


한 번 그렇게 맛을 들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일기 쓰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매일 일기를 쓰며 알게 된 의외의 사실에 대해 정리해 봤다.


첫째, 길게 쓰지 않아도 의외로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내가 일기를 ‘매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하루에 딱 세 줄만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세 줄이냐고? ‘세줄일기’라는 앱을 이용해 기록을 남기는데, 거기엔 글을 세 줄밖에 못 쓰게 되어 있다.

세 줄을 넘어가면 글 입력이 안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 줄 안에 어떻게든 욱여넣어야 한다.


‘그게 무슨 일기냐’, ‘쓸 수 있는 말도 별로 없겠다’라며 하찮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 예시를 보자.

일이 늦게 끝나 7시가 넘어 집에 왔다. 아이들은 티니핑을 보고 있었다.
아내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둘째가 계속 훌쩍거려 콧속에 연고를 발라주려 했는데 대성통곡했다.
- 2023년 11월 15일

이렇게 쓰면 세 줄이 꽉 차는데, 그래도 꽤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게 뭐야…?’ 하고 시큰둥해하려나.


상관없다. 어차피 나의 일기를 가족이 아닌 제 3자가 볼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렇게만 써도 충분히 많은 걸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건 쓰나 마나 한 것 아니냐고? 매일 일기를 쓰며 알게 된 두 번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타이밍인 것 같다.


둘째, 쓸 땐 별 거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쌓이면 가치가 생긴다.


위에 예시로 든 일기를 다시 한번 보자. 조금 늦게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이들은 TV를 보고 있었고, 저녁을 먹고 잤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그걸 ‘굳이’ 글로 썼다.


처음엔 나도 저런 이야기를 기록할 때면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젠 이렇게 주문을 건다.


‘이런 기록이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2023년 11월 15일의 일은 뇌에서 완전 삭제되고 말 거야.’라고 말이다.

어차피 별 일도 아닌데 좀 삭제되면 어떠냐고? 또 다른 예시 하나를 보자. 3년 전의 11월 15일 일기다.

장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셨다.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아내가 요즘 뜨개질로 양말 뜨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이다. 종일 하고도 진전이 없었다고.
- 2020년 11월 15일

역시나 당장 내일이라도 있을 법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의 나’는 이 글을 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육아휴직을 함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아주 애를 많이 먹었는데, 장인 장모님께서 주말에 한 번씩 아이들을 봐주시곤 해서 숨통이 트였었다는 것.


또, 당시 내가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그림 그리는 걸 배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 아내도 뭔갈 해보고 싶다며 뜨개질 클래스를 수강했는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아 힘들어했다는 것.


그때의 우리 집안 분위기, 나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간 사람처럼 말이다. 실제 일기에는 사진도 한 장 첨부돼 있는데, 그것과 함께 보면 정말 시간여행자가 된 것만 같다.

1, 2주 전의 일기, 한두 달 전의 일기를 보는 것으로는 그 정도의 감상에 빠지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일기 쓰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잘 안 될 수 있다.


늘 하는 출퇴근, 매일 똑같이 걸어가는 등굣길, 항상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느낌으로 먹는 집밥.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일상을 기록해야 할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보는 거다. 기록이란 건 원래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가치를 발휘하는 법이라고 믿어 보는 거다. 그러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1년 전 오늘, 4, 5년 전 오늘 뭘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이 쌓여 있고 그걸 언제든 볼 수 있다면, 삶이 정말 풍성하다고 느껴질 것 같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3, 4년 전의 일기들을 읽게 됐는데,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 ’요새 시간 너무 빨리 간다고 아쉬워했었는데 나는 사실 엄청 긴 시간을 보내왔구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구나’ 하고 말이다.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에겐 1년도, 한 달도, 하루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셋째, 시작부터 거창할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무슨 일이든.


2020년, 처음 세 줄 일기 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일을 5년이 다 되어 가도록 계속할지 몰랐다.


‘아무리 바빠도 세 줄 쓸 시간 없겠어?’라며 최소 단위로 시작한 일을 이제는 습관처럼 하게 된 나를 보고 생각했다.


‘이게 되네…?’ ‘다른 것도 이런 식으로 하면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도모해 보기 위해서 처음부터 큰 힘을 들인다. 작게 시작할 생각은 잘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라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부터 힘 빡 주고 시작하면 머지않아 제풀에 지치기 쉽다. 자기 기준에서 ‘이 정도면 매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해보는 게 최고다.


1년 해서 아무것도 되는 게 없으면 2년이고 3년이고 더 하면 된다. 어차피 매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을 선택했던 거라면, ‘지속’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결국,

뭐든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바로 매일 일기를 씀으로써 얻은 것이라면, 일기 쓰기가 직접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않았더라도 꽤 해볼 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