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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l 10. 2021

벼락치기 효도하기


문득 아빠를 위해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네 집 연예인은 부모님께 집 사드리고 차 사드리고 다 한다는데,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뭐라도 좀 해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아빠께 '뭐라도' 해 드리고 싶어서 생각한 것이


바로 한의원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후회되는 환갑


지금도 후회되는 게 있다면 아빠의 환갑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평균수명이 80~90을 아우르는 요즘 세상에, 환갑잔치는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다 핑계일 것이다. 평소에 뭐 하나 기념일을 챙기는 게 변변찮았던 나는 아빠의 60돌 생신마저 은근히 귀찮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빠는 예전부터 내가 기념일이나 가족모임에 시큰둥한 것을 두고 많이 서운해하셨다. 그런데 그 사실마저도 나는 미처 생각할 줄 몰랐다. 평소에도 다른 이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았고 '안 주고 안 받기'로 맘속에서 굳어져 버렸다. 그런데 그걸 부모님께도 적용시키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개념이 없었다. 한 번은 아빠께서 생신을 앞두고 "나도 생일 선물 받고 싶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때 난 조금 놀랐다.


- 아빠도 무언가를 받고 싶어 하시는구나!


내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건 당연하고 아빠 생신날에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 그냥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만 드리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얼마나 불효였는지. 그것도 아빠께서 말씀해 주셔야 알다니.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념일을 챙기는 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여러모로 부지런한 동생 덕분에 아빠의 환갑은 그럭저럭 준비할 수 있었다. 작은 현수막을 만들고 특별한 문구로 주문 제작한 꽃바구니도 샀다. 팔 할은 엄마가 준비해주신 생일상과 함께, 아빠가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경치 좋은 곳들을 여행 다니며 그렇게 우리 가족끼리 즐겁게 환갑을 치렀던 것 같다. 거창하게 환갑을 준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아빠였지만, 정말로 거창하기는커녕 '소소한' 이벤트를 두고서 어쩐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사진 속 아빠의 표정은 환히 웃는 얼굴이셨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아빠가 이렇게 편찮으신 줄 알았더라면... 뻑적지근하게 좋은 뷔페를 예약했어야 한다. 떠나가라 아빠께 큰 소리로 축하드린다고 장수하시라고 크게 외쳐드렸어야 한다. 후회해 봤자 소용도 없지만...


환갑이 지난 후,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아빠께 알게 모르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문득 아빠께 무언가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알리지 않았던 이유


아빠의 기념일을 잘 챙겨드리지 못했던 것을 비롯해서, 언제나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아빠의 한의원에 너무 둔감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자식인 나는 한의사로서의 아빠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일례로 최근에 딱 한번 맞기 전까지도 아빠께 침을 맞아본 적이 없었고, 한의원에 가본 적은 평생 동안 한 네다섯 번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아빠께서 평생을 헌신하며 운영해오셨던 한의원에 무관심한 것은 아빠 인생의 큰 부분에 통째로 무관심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한의원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아예 의식적으로 아빠의 한의원을 알리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굳이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그렇게 했던 건 아니지만 나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한의원은 병원이고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한의원에 오는 사람들은 환자들인데 그들의 아픔을 두고 한의원에 오라고 홍보하는 것이 어쩐지 예의가 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만약 멀쩡한 사람에게 한의원에 오라고 한다면 아플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 한의원은 아빠의 업이지 나와는 관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의사는 아빠인데, 가끔 사람들이 혼동을 하거나 가족인 내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종종 사람들은 엄마께 증상을 물어보며 약을 지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몸이 약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보약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섣부른 진단을 내리거나 한의원에의 권유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아빠는 엄마가 한의원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도록 하셨는데, 아마 이런 경우를 경계하기 위함이실 것이다.


셋째, 한의원은 내가 거들지 않아도 이미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한의원은 한때 내가 살던 도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되었다고 한다. 한의원을 크게 운영하실 땐 부원장 두 분을 더 두시고 이비인후과 최신 기계들을 들여오시며 한방 치료를 전문화하셨다. 또 아빠의 한약은 입소문이 나서 멀리 타도시에서도 한약을 지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다른 한의원들보다 한약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그 이유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한 제, 한 첩의 양을 그대로 유지하신 채 농도를 진하게 달여내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약재 선별과 한약 제조 과정에서 까탈스럽고도 최상의 품질기준을 가지고 계셨다. 만약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 청결하지 못하거나 실수가 있을 땐 간호사분들을 무척이나 엄격하게 다그치셔서 아빠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분들에게는 좋은 약과 건강으로 보답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로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한의원에 오라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런데 또 한편으론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도 드는 것도 사실이니...


그래서 문득 아빠가 운영하시는 한의원에 대한 어떤 기록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는 아빠는 원래 있던 작은 한의원으로 옮기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중고였지만 나름 새 출발이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때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운영하시던 한의원은 대로에서 큰 간판이 보이는 멋진 자리였는데 이사를 간 후 어느새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그런데 그때 한의원 자리를 사진 한 장 남겨두지 않은 걸 알게되어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추어 홍보영상


사실 어떤 기록이라고 해봤자 사진을 찍는 게 다였다. 옮긴 뒤 한의원을 처음으로 가본 것이기 때문에 구석구석 살펴보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환자의 시점으로 아빠의 진료실까지 도착하는 짧은 스토리로 구상했다. 키포인트는 원장님(아빠)의 인자하고 환한 웃음. 오랜 진료기록과 깔끔한 침구실을 보여주고 한의원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소체환, 공진단 같은 약을 소개하고 운영시간을 알리면서 끝낸다. 급하게 찍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침 맞는 모습을 담거나 한약 달이는 과정을 찍어도 좋았을 법했다.  


따로 영상편집 프로그램도 없어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진과 영상들을 짜깁기했는데, 그래서 화질도 엉망이고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홍보영상' 흉내를 내며 만들어보려고 하루 종일 끙끙대며 애썼던 것 같다.


드디어 아빠께 결과물을 보여드렸더니 아빠는 별다른 반응은 없으셨지만 꽤나 흡족해하시는 눈치였다. 작게나마 한의원에 애정을 쏟게 된 것이 아빠께 뒤늦은 효도를 한 것처럼 뿌듯했다.


(그런데 실컷 영상을 만들어놓고는 막상 어디에 홍보하기에는 또 민망했던가 보다. 나는 개인 SNS에 올리지조차 않았다. 또다시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빠께선 한의원을 쉬기로 하셨고 앞으로도 한의원을 계속하실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른 환자의 건강을 챙기기엔 아빠의 건강이 너무 안 좋고... 지금으로선 치료에 전념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작은 한의원으로 옮기시고 난 후 아빠는 한의원 나가시길 무척 즐거워하셨는데, 참으로 인생의 타이밍은 얄궂다.


홍보영상이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홍보는 못한, 이젠 추억이 되어 버린 한의원 영상. 어디에도 올리지 못한 영상을 여기에 남겨두고 예전의 멋진 모습, 한의사로서 아빠를 기억하고 싶다.





아빠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서.

겨우 이것밖에 해 드린 게 없어서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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