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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17. 2021

글을 쓴 만큼 아빠의 생을 더할 수 있다면


놀랍도록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다.


죽음을 아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삼 주 전이다.


아빠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에서 엄마는 울음으로 수화기에 매달리고 계셨다.




징조


아빠는 얼마 전부터 기침이 잦으셨다. 처음에는 단순히 용각산을 드실 뿐이었는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안 되겠는지 아빠는 홀로 한약을 지어다 드셨다. 아빠 약이 어떤 약인데, 단번에 효과가 나타나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이상하게 잘 안 낫는다고 하셨다. 아빠는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떠나갈 듯 기침을 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도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느 뉴스 기사를 떠올리고 지나가는 말로 "아빠 혹시 결핵 아니에요?"하고 슬쩍 물었다. 아빠는 결핵은 아닌 것 같고 천식 끼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빠는 한약으로 천천히 낫는 건 안 되겠다며, 병원을 하는 의사 친구에게서 양약을 처방받아 오셨다. 그런데 하루만 드시고는 독한 양약을 먹으니 머리가 어지럽다며 그만 드셨다.


때마침 나라에서 날아오는 정기 건강검진 안내를 받고 엄마는 또 분주해지셨다. 이번에는 꼭 큰 병원에서 건강검진받아야 한다고 아빠를 채근하셨다. 아빠는 고혈압이 있으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드시는 건 변함이 없자 엄마는 아빠가 술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셨다. 아빠는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셨을 테고, 알면서도 굳이 그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으셨기에 건강검진받는 걸 참으로 꺼려하셨다. 오죽하면 엄마는 아빠에게 건강검진받으러 가자는 약속을 녹음해두고 약속한 증거라며 아빠를 우격다짐으로 끌고 가려하셨을까. 결국 5월 달에, 아빠와 엄마는 지역 의료원에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셨다. 가족들은 아빠의 간이 안 좋아지셨거나 고혈압이 악화되었을 거라 걱정했다.




현실


그리고 얼마 뒤 24일 날, 엄마의 전화가 왔고 다짜고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요! 엄마 왜 그러세요!"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가 그러는데, 아빠가 결핵 아니면 암인 것 같단다. 그런데 결핵은 그냥 하는 말 같고, 아무래도 분위기가 암인 것 같다."


"무슨 말이에요 엄마! 무슨 소리예요 그게!"


"큰 맘먹어야 된다.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어느새 나도 눈물범벅이었다. 질질 울면서 컴퓨터를 찾았다. 온통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정신줄을 붙들어맸다. 슬픈 건 슬픈 거고 우선 큰 병원부터 가야만 했다. 주변에 의사 친구, 동생이 아는 의사 분들, 동원해 묻기 시작했다. 폐암에 좋다는 의사들 리스트를 구글, 네이버, 다음이니 검색 더하기 검색을 해서 모조리 찾아봤다. 대충 폐암 쪽으로는 서울 삼성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제일 좋다고 한다. 거기서도 예약이 가능한지 살펴보려면 일단 홈페이지 가입을 하고, 망할, 가입 축하 메일을 받고, 의사들 하나하나 가능한 날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좀 이름난 분들은 홈페이지 예약이 불가능했다. 어쨌든 최대한 진료를 빨리 잡을 수 있는 분과, 암센터에 근무하시는 분들 위주로 리스트업 했다. 동생이 우선 아산병원에 유명한 어느 교수님 예약을 잡자고 하길래, 그분은 또 전화예약밖에 안 돼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000 교수님 초진 6월 2일 날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000 교수님이요? 아 네. 그런데 암 확진이신가요? 확진인 분들만 2일 날 가능하고 아니면 9일 날 진료 보실 수 있어요."


"확진이요? 아 일단 CT 검사만 받았는데 이게 확진인가요? 암일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그럼 확진은 아니고요. 9일 날 가능하세요."


"아... 9일은 너무 늦네요. 일단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초진인데 확진을 어떻게 알라는 건가. 짜증이 밀려오는 듯했지만 생각해보니 또 '아직 확진이 아니다'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참, 그러고 보니 암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는 거지. 암이 아닐 수도 있어, 암이 확실하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울지 말자. 아직 모르는 일이다.


결국 전화예약 가능한 시간을 넘겨 다음날이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동생과 함께 교회에 다니는 자매님들 중에 아산병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까지 어벤저스처럼 근무하고 계시는 바람에, 결국 그분들이 예약을 잡아 주셨다. 초조하게 다른 의사들 명단을 검색하고 아무리 검색을 열심히 돌려도, 결국에는 인맥이 최고인 듯했다. 빽으로 특별히 안 되는 날을 당겨서 날짜를 잡았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의사 선생님으로 예약을 잡아야 할지 알려주셨던 거다. 솔직히 생각보다 너무 젊은 분이고 내 검색리스트에는 없는 분이었는데,  아무리 유명한 분이라도 이분이 실제로 믿을 만한 분인지 알 수 없었기에 너무 답답었기 때문에, 그저 누군가 들이밀어 믿어보라고 하는 사람이 생 것만으로도 기대고 싶고 매달리고 싶고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그다음 날, 그러니까 검진 결과를 받아 들고 이틀 뒤 26일 날, 곧바로 아빠는 서울에 올라가시기로 했다. 모두 다 동생 덕분이지만 그래도 함께 일사불란하게  빠르게 행동한 결과라며, 아빠는 내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정반대의 세계


정신없이 예약을 진행하면서도, 그 뒤로는 눈 깜박이면 눈물이 밀려왔다. 아무리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머리로 생각하려 해도, 마음은 온통 자꾸만 '그럴 수도 있다'라며 수시로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와 또 썰물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주룩 눈물이 흐르고

혼자 화장실에 있으면서 왈칵 눈물이 흐르고

혼자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도 어느새 훌쩍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꽃집에서 화분을 내다 팔고 있는데, 매번 화분 사들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이젠 저 꽃을 사들고 가도 아빠가 아니면 누가 키우나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와르르하고 쏟아지는 것이다.


한순간에 모든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지옥처럼 변했다. 흔히들 조잘거리고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컴퓨터 게임 속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바타처럼 보였다.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내는 그들의 세계가 현실인가, 아빠의 암, 어쩌면 죽음이 코앞에 닥친 나의 세계가 현실인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의 세계였지만 이제 정반대의 세상에서 나 홀로 남겨졌다.



기도


동생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암 환자분이 예수님을 믿고 다 낫게 되었다는 간증 영상을 올렸다. 전화를 해서는 언니도 기도를 좀 하라고 했다. 그래, 까짓꺼 지금 내가 기독교 무교 따질 땐가. 언니도 기도할 수 있어. 아빠가 낫는다면 기독교로 개종할 수도 있어.


하지만 과연 하나님이 그런 '조건부 믿음'을 좋아하실 텐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치사하게 조건부 믿음으로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가지도 않는데 무얼 바라고 기도부터 하는 건 그네들의 종교도 원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순수해야 한다. 순수히 따라야만 한다. 결벽증처럼 나는 순수하게 내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그래서 간절히 애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빠를 생각하자. 오롯이 집중하자.


불현듯 떠올랐다. 아빠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이다. 아빠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보자. 동생이 기도를 하는 동안에 나는, 아빠글을 쓰자. 내가 병을 고쳐드릴 수도 없고 내가 곁에서 간호해 드리지도 못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 글을 쓰기라도 하자. 나는 특정 신을 믿진 않지만 내가 간절히 믿는 것이라곤, 정성을 다하면 온 세상이-하늘이- 감읍하여 도우시라는 것이다. 




<매일 아빠를 위한 글을 쓰면 아빠의 생이 하루만큼 더 늘어날 수 있다면, 만약 그러하다면 글쓰기 따위는 더 이상 선택이 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아빠의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2021.05.25.>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기도를 한다.
그게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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