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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30. 2021

아빠의 암, 그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여기 유명한 사고 실험(가상의 시나리오)이 있다.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와 청산가리가 든 유리병이 있다고 하자.


1시간 뒤 그 유리병이 깨질 확률은 50%다.


(방사성 물질 라듐 핵은 50% 확률로 붕괴하는데 가이어 계수기가 그것을 감지하여 핵붕괴 시 유리병을 망치로 내려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면 1시간 뒤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은 얼마인가?


과연 50%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Katze): 1935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서 고안한 사고 실험 (출처: 위키백과)





아빠의 억울하다는 말씀


아빠는 정밀검사를 위해 4박 5일간 입원하셨다. 아빠의 케이스는 호흡기 내과에 배속되어 폐암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이므로 6인실 병실에서 폐암을 의심하는 유병 환자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때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누가 보아도 할아버지인, 60대이신 아빠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런 까마득한 어르신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아빠는 무척 젊으신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기침소리가 제일 자주 울려퍼질 정도로 증상이 제일 심하셨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자 아빠는 "억울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빠 또래 암 환자의 발생 확률이 낮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병실에서만 보자면 1/6의 확률로 아빠에게만 암이 발생했다. 게다가 아빠 나이 또래는 아빠밖에 없다. 적은 발생률에도 불구하고 그 적은 확률로 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은 그것 참 '재수가 없다'라고 느낄 수밖에, 본인이 느끼는 감정은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아빠를 보는 나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아빠가 암에 걸리셨는지,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암의 발생원인은 흡연이 15~30%를 차지하고 만성감염 10~25%, 음식이 30%, 직업적 요인이 5%, 유전적 요인 5%, 환경오염 3%, 음주가 3% 등을 차지한다고 한다. 아빠는 담배를 피우신 적 있지만 이미 20년 전에 끊으셨다. (물론 일단 피운 기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 체내 세포 손상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언제나 건강한 음식을 드셨기 때문에 음식의 요인을 제외하고 직업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제외하면 겨우 음주 정도만 아빠의 암 발생 원인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암의 발생에 관한 또다른 통계를 보자면 1년 동안 암이 발생한 사람들의 수를 전체 인구로 나누어 발생 현황을 확률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인데, 아빠는 인구 100,000명당 290명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참 드문 확률이지 않은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아빠는 남들보다 '특별'한 경우였기에, 나는 아빠의 특별함을 놀라움과 벅찬 감정으로 맞이할 뿐이었다. 물론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다가 말이다.




통계가 말 못 해주는 것



발생률 37.4%. 한국인이 평균 83세의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이 발생할 확률

사망률 27.5%. 2019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전체 사망자 통계에서 나눈 사망률

사망 분률 22.9%. 암으로 사망한 사람들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종은 폐암이었으며 10대 암 중 22.9%를 차지함. (다음으로 간암 13.0%, 대장암 11.0%, 위암 9.4%, 췌장암 7.9% 순)

생존율 27%. 1993년부터 2018년까지 폐암을 진단받은 환자 중 2019년 12월 31일까지 생사가 확인된 사람들 중, 최근 5년간(2014-2018년) 발생한 폐암 환자(남자의 경우)의 5년 상대생존율


(아래 링크는 본 글에 나온 모든 통계자료의 출처임.)


아빠의 경우를 말해보자면 아빠는 발생률 37.4%의 확률로, 사망률은 무려 27.5%나 되는 암에 걸리셨다. 그중에서도 발생률 순위는 전체 암 중에서 3위이지만 사망률 순위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는 폐암에 걸리셨다. 특히 폐암의 전체 5년 생존율은 27%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폐암 발생자 4명 중 3명은 5년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무서울 수가.


수많은 통계가 아빠의 암을 저승사자의 손길로 가리키고 있었다. 찾으면 찾을수록 얼마든지 공포스러울 수 있었다. 그런데 또 굳이 그 반대의 경우를 들자면 한편으론 다행스러울 수도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아빠는 27%의 확률로 5년 뒤에도 살아계실 수 있다고 한다. 그래, 믿자. 믿어 보자.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로 결론 내린 확률이란, 우리를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많은 연구나 주장, 그리고 희망 속에서 통계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각종 통계로 인한 확률들은 아빠의 병을 말할 때 부질없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들 통계는 전체 인구 중에서, 십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그 확률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그저 한 사람이 아닌가. 아빠는 홍길동처럼 수십만 명으로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아빠라는 존재를 경험치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빠의 병은 위의 통계와는 결이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 수많은 통계들... 발생률과 사망률과 생존율 등은 내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낮은 확률임에도 결과적으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 앞에서 수많은 통계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내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통계에 비추어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 오히려 통계는 불신을 거듭하게 만들고 희망이라는 믿음을 짓밟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통계들을 보면 볼수록 도대체가 왜 아빠가 병에 걸리셨는지 더더욱 믿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여기저기 통계를 찾아 나서고, 조금이라도 나은 통계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등 아빠의 병을 통계로 설명하고 희망을 부여잡으려는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게 맞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필요하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두 개의 확률


사실 나는 예전부터 확률을 믿지 않았다. 그 어떤 개떡 같고 찰떡같은 믿음 덕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떠한 확률이라도 결국 그 예측(가정)이 맞거나 / 혹은 틀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암으로 예시를 들어보자면, 종국적으로 암에 걸리거나 / 안 걸리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닌가.


뚜껑을 열어보니 이미 암이 존재하고 있더라는 아빠의 경우, 암 발생률 37.4%라는 숫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암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 알 수 없기에 결정론적 해석에 기댈 수도 없다. (결정론에 따르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을 때' 결과값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확률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말하는 '확률'은 잘하거나/ 못하거나, 좋거나 / 싫거나, 맛있거나 / 맛없거나, 꽝이거나 / 당첨이거나, 이렇게 모든 결과는 결국 반반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적인 확률과 내가 생각하는 '확률'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예시에서 말하자면, 유리병이 깨질 확률과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의 차이와도 같다. (물론 방사능 물질의 붕괴 확률을 경험적으로 판단한 것이 50%라고 말한다는 가정을 덧붙여야겠다.) 말하자면 통계학적 확률과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을 말하는 '확률'의 차이다. 내가 생각했던 '확률'이란 바로 종국적으로 기거나 / 아니거나를 뜻하는 불확정성 개념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라듐은 또한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나의 사고 실험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1시간 뒤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확인될 것이다.


이는 어느 해석(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자를 열기 전까진 생과 사가 '중첩'되어 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고, 슈뢰딩거가 그러했듯, 삶과 죽음이란 상반된 개념이 겨우 확률론으로 중첩될 수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라는 식으로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실험(이중 슬릿 실험)에 따르면 하나의 경우는 확률적으로 위치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즉,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며, 양자역학의 확률은 일반적인 개념의 확률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슈뢰딩거라는 과학자는 원래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비판하려고 위의 사고 실험을 주창하고 상자 속의 고양이를 예로 들어 결과의 역설을 말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예시는 불확정성 개념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나의 확률론


위의 구분되는 확률의 개념에 따르면 아빠의 암의 발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암을 발견하기 전까지 암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암을 발견하고 난 다음 암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의 경우의 수를 따져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빠의 생존율과 사망률은 수많은 통계들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사망일 수도 생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있는 인식론과는 다른 것으로 혼동의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정정하자면) 그저 앞으로 일어날 일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빠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


아빠의 병명을 받아들고 한동안 폐암의 피읖 자도 꺼내지 못했다. 말이 씨가 될까봐. 그렇게 결정되고 말까봐.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바로 수많은 통계가 말하는 폐암의 사망률(치명률)로 머리가 어지러워서였다. 그게 정말 현실이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감히 떨리는 이 물음 앞에서 나의 확률론은 말한다. 앞으로 1년 뒤, 앞으로 5년 뒤, 앞으로 10년 뒤, 앞으로 40년 뒤 아빠가 100살이 넘어서까지 아빠는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사실은 아빠의 미래를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따라 아빠의 스스로의 사망률은 결정될 것이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서라야 운명은 결정된다."




......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은 37.4%라고 하는데, 대체 왜 아빠는 암에 걸리신 걸까? ...... 폐암으로 5년 내 생존할 확률이 겨우 27%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아빠께서 부디 오래오래 사실 수 있을까?......


흔한 확률과 통계들 말고,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이해하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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