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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l 06. 2021

아빠, 도망치세요


아빠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했다.


당장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살피는 사람,


의외로 아무 말도 없는 사람,


아빠 말고 엄마를 통해서 연락을 해 오는 사람.


주위 사람들은 큰 용기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때론 그들로 인해 오히려 더 아플 때도 있었다.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보이더라


<아빠가 암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 외엔 아무것도 알 수 없던 오리무중의 시간이었다. 정밀검사를 하기 전 약 2주 동안 가족들은 하루하루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최대한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의사의 태도나 최근 아빠의 건강 상태 등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가정해야 했고 결국 아빠는 이참에 한의원을 쉬기로 (어쩌면 그만두기로) 하셨다. 혹시 모를 암이라는 진단, 그리고 치료에 전념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주변 정리를 하시기로 한 것이다. 환자들에게 휴원을 안내할 뿐만 아니라, 친지 등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빠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 필요했다.


아빠는 발이 넓으신 분이라 아빠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처음에는 알음알음, 그러나 곧 '빅 뉴스'가 되어 버렸다. 아빠를 뵈러 주말에 집에 왔더니 온통 전화에 전화를 하고 계셨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아빠를 불러내는 바람에 아빠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이전보다 더 바빠 보이셨다. 건강이 안 좋으신데 저렇게 무리하셔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다음 주말에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아빠의 수화기는 여전히 오랫동안 쉬지 못하고 수시로 연락이 오고 있었다. 아빠도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를 하려니 조금 지치신 듯했다. 아빠가 걱정되어 연락을 해 오는 분들에게 고마웠지만 나는 이제 진심으로 아빠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엄마, 아빠 좀 쉬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돼요."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있제. 그것도 그런데..."


"왜요?"


"있제. 이렇게 일이 터지고 나니까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 전화 한 통이 없네..."

 

엄마는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무거운 모양이셨다. 함께 모임을 하고 자주 보면서 친해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전해 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여태껏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번 인사하게 된 다른 아주머니가 전화를 주셔서 놀라우셨다고 하셨다. 이런 걸 보면 이렇게 안 좋은 때일수록 사람이 가려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엄마, 그런데 그게 꼭 정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요."


엄마는 수긍하시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엄마는 주변인들의 반응에 꽤나 예민해지셨다.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서운함을 느끼시곤 했다. 특히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일 때가 극심한 경우였다. 아빠와 동창이기도 한 외삼촌이 전화 한 통 주지 않는 걸 두고 엄마는 못내 속상해하셨고, 결국 외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와서도 "니 진짜 아픈 거 맞나"라고 농담으로 가벼이 넘겨버리려 한 걸 보고, 엄마는 기가 차 하셨다. (외삼촌은 암 진단을 받았다가 나중에 오진인 걸로 밝혀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지만) 전화가 왔을 때는 이미 한참 뒤 아빠가 폐암 4기 확진 판정을 받으신 때였다.


나는 애써 엄마를 달래 드리려고 노력했다. 사실 엄마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빠가 없으면 사람들이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인 듯했다. 나는 엄마께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러는 나야말로 주변인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두려웠던 것 솔직한 심정이었다.




작은 트라우마


처음으로 아빠의 소식을 들었던 날, 나는 너무 불안하고 두려운 나머지 누구든지 붙잡고 울고 싶었다. 혼자서 울면서 이미 많은 감정을 쏟아내고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그날 함께 밥을 같이 먹던 친구들에게 충동적으로 말해 버다.


"사실 오늘 아빠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


잠깐 몇 초 동안의 정적... 그러고 나서 단 한 마디의 말조차 없다니.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참 아득해졌다. 도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괜찮아요?"라는 말 같은 위로의 말과 어떤 순간을 기대했던 걸까. "어떡해..."라는 감탄사조차 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저녁 먹는 자리에서 괜히 어두운 얘기를 꺼내 분위기를 망쳐버린 것 같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른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온통 멍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팽그르르 도는 나를 발견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그들너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종종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지낸 시간이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일적으로 아는 사이에서 내가 쓸데없이 감정을 끼어들게 만든 것이 잘못이었던 걸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결론적으론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나를 자책하는 것밖에 남는 건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빠의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잘 지내니?"라며 어쩌다 안부 문자를 받을 때조차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고 잘 지낸다고 얘기해 버렸다. 나를 너무너무 걱정해주실 것 같은 분들에게조차, 내가 정말 기대고 싶은 친구들에게조차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안 좋은 소식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싶지 않다는 핑계였지만, 아마 주된 이유는 또다시 그렇게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


너무 친절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아빠는 피곤하셨고, 가까운 줄 알았는데 아무 연락도 없어 나와 엄마가 서운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빠를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아빠에게 잘못을 했고 그 때문에 차마 직접 아빠에게 연락할 수 없던 사람들이다.


아빠의 암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그 스트레스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아빠에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존재한. 사실 친가 쪽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불화가 있었다. 불화라기보단 아빠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으신 것이었다. 그렇게 아빠의 선의가 도리어 형제들의 배신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기어이 화병이 나셨다. 고혈압이 시작되셨던 때가 그즈음이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의 방황도 큰 몫했으며) 아빠는 우울증을 꽤 앓으셨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우리 가족은 명절 모임에 함께하지 않았고, 하지만 이는 자식들에게도 보여주기 민망한 남우세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는지 아빠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으시고 마음속 큰 앙금으로 남겨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갈등한 사람은 바로 삼촌이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왔기 때문에 그 배신감도 가장 컸기 때문이실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적 삼촌과 숙모, 사촌동생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립다.) 하지만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삼촌의 말과 행동으로 아빠는 무척 상심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아빠를 몰아붙이는 지경에 이르러, 두 분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얼핏이라도 삼촌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아빠는 무척 예민해지셨다. 곁에서 지켜본 엄마는 할 말이 많으셨겠지만 되도록이면 아빠 앞에서 의견을 얘기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어느새 우리 가족에게 아빠의 형제들, 삼촌 이야기는 금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 몰래 숙모와 연락을 해 오고 종종 숙모를 챙겨주고 계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우연찮게 숙모에게 아빠의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어느새 친가 쪽에 소문이 다 퍼져버렸고 이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빠가 친가 쪽에 굳이 알리지 않고 싶어 하셨던 건 아직까지 형제들의 전화를 받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셨기 때문일 것이다. 병까지 얻어 처연해진 아빠 스스로의 모습에 더욱더 초라해져 쓸데없이 동정을 사기 싫다는 마음이셨을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엄마는 아빠께서 이번 기회에 형제들에게 마음을 여셨으면 하고 바라셨다. 이제 그만 용서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얼 더 바라겠냐는 거였다. 아빠도 조금은 누그러지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몇 년 만에 삼촌이 아빠와 직접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여기까지 오기 참으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아빠의 쌓인 앙금이 녹아내리기엔 공감 없는 몇 마디 위로의 말로는 부족했다. 두 분이 화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전 그대로라는 걸 다시금 깨달으셨나 보다. 아빠는 삼촌과 통화를 하고 나서 더욱더 예민해지셨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삼촌은 숙모를 통해서, 숙모는 엄마를 통해서 자꾸 연락을 해 오는 것이다.


잠도 못 주무시고 기침을 하는 아빠에게, 어떤 이들의 연락은 아빠를 더 아프게 했다. 아빠는 분명 기침이 더 심해지셨다. 다시금 속상함이 밀려 올라와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보자니... 이미 암에 걸리신 아빠가 다시 한번 암에 걸리실 것만 같았다.


"왜 자꾸 빙빙 돌려서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뭐 죄책감 덜자고 하는 것밖에 더 되나."


처음엔 아빠가 마음을 열길 바라셨던 엄마도 결국 나중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락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시고 나서도, 엄마는 숙모의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를 두고 밤늦도록 폰을 만지작거리며 홀로 식탁에 앉아 속상해하셨다.




아빠, 애쓰지 마세요


목이 메인 상태에서 목에 걸린 가시가 자꾸만 걸릴 때... 특히 이번에는 절대 쉽게 뽑히지 않을 가시인 것을 직감다. 나는 아빠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지금 자꾸만 아빠를 쉬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정말 싫다. 몸과 마음이 약해졌을 때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평온을 집어삼키기 쉽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힘들어하는 아빠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줄 수 없었던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외쳤다.


'도망치세요, 아빠. 전화받지 말고 마주하지 말고, 애써 마음 쓰지 말고요.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그저 외면해 버리세요!'


용서와 화해라는 의미 있는 가치도, 이를 위해 마음 한편을 생살로 뜯어내 오롯이 바칠 수밖에 없을 땐 과연 의미가 있을까. 지금 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빠의 일방적인 용서만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평생 형제들과 화해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몸과 마음이 다 상한 아빠에게 또다시 용서라는 허울을 쓴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아프게 한다.  어쩌면 아빠의 암이란 건 숨겨져 있던 아픔이 이제서야 드러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마음을 쉬셨으면 좋겠어요.
힘들어하시는 건 더 이상 아빠가 할 일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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