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추락한 영혼을 구원하러 온 영화 ‘더 폴'

by 별별 Jan 27. 2025


신기한 영화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 하루의 고된 일정으로 인해 저녁 늦게 영화 관람을 하느라 초반에 잠깐잠깐 졸았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도 며칠 째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난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영상미를 잊을 수 없었고 이야기의 퍼즐을 뒤늦게 맞추어보면서 내가 놓친 장면이 무엇인지 아쉬움을 곱씹게 된다. 주연 배우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리뷰도 찾아보면서 그제야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그 장르를 약간 공포(?) 또는 판타지 무협 정도로 생각했다. 심지어 피를 연상케 하는 붉디붉은 메인 포스터에도 불구하고 전체관람가라고 해서 도저히 감 잡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흑백 화면과 장엄한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7번) 음악이 흘러나와 매 장면이 마치 상업광고 시퀀스 컷을 보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영화의 시작도 전에 그야말로 미궁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오프닝에서 추락했음을 암시하는 사람은 주인공 ‘로이’였다. 그는 스턴트맨 연기를 하다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거기서 어린 환자 ‘알렉산드리아’를 만나게 되는데, 이 소녀는 오렌지 나무에서 떨어져서 로이와 반대로 팔을 다쳐 입원해 있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말을 걸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영화는 여기서부터 현재 상황에 더해 로이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야기의 대강은 오디어스 왕에게 원한을 품은 다섯 사람이 함께 왕을 처단하러 가는 여정이다. 여기서 이미 영화를 관람한 관객으로서 영화 관람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액자 속 이야기의 개연성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나중에 눈치채겠지만 사실 그 다섯 사람은 로이의 주변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또한 로이의 이야기는 처음엔 그럴듯한 것 같아도 가면 갈수록 비현실적이고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그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냈기 때문이다.        


로이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가득한데, 그래서 처음에는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거대한 자연 풍광을 비롯해서 다양한 건축물과 절제된 듯 화려한 색감이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구성되어 한 장면 장면만 떼어 놔도 화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혀 CG를 입히지 않은 오직 풀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었다고 하는데 그걸 모르고 영화를 볼 때는 세트장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잘 짜인 듯한 공간적 배경을 구현해 놨다.      


undefined
undefined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 또한 무심하게 한 발만 쏴도 적들이 우후죽순 죽어나가는 것처럼 지나치게 완벽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딱히 보잘것없는 이야기의 줄거리였음에도 그 이야기를 듣는 알렉산드리아의 입장에서 아주 대단한 서사시로 탈바꿈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로이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고 자살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비관하며 한없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천진난만한 소녀 알렉산드리아를 만나 약을 훔쳐오도록 꾀어내려고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 것이다. 로이는 현실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자 감정을 이입하는 바람에 그의 이야기 또한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예상치 않게 알렉산드리아가 중간중간 개입하면서 이야기는 뒤틀리게 된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너무 많은 줄거리를 얘기한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더 폴(The Fall)


지난번 관람한 영화 리얼 페인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 제목이 영어로 그대로 옮겨져 있을 땐 관람에 앞서 영화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더 폴’이라고만 했을 땐 와닿지 않았던 것이 ‘추락’이라는 한글 단어로 바꾸니 영화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영화에서 말하는 추락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로이의 추락이다. 그는 실제로 스턴트연기를 하다가 추락했고 이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많이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그런 그가 알렉산드리아를 만난다. 소녀 역시 오렌지나무에서 추락해 다친 인물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팔을 다쳤기 때문에 다리를 다친 로이를 대신해 심부름을 곧잘 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처음에는 로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그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주며 함께 완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로이를 여러모로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추락한 자신에게 다가와준 소녀에게 로이는 장난스럽게 묻는다.     


“너는 내 영혼을 구원하러 왔니?” 

“으응, 네?”     


극 중에서 알렉산드리아는 영어를 잘 못할뿐더러 로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재차 물었지만 소녀는 끝내 로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추락이란 더 이상 희망도 없이 한없이 나락에 떨어지는 것. 하지만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로이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절한 아저씨일 뿐이다. 심지어 소녀는 또다시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되지만 아이가 경험한 추락은 어른들을 걱정시켜서 미안한 마음 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순진한 소녀가 보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어른은 오히려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었다. 추락이 곧 절망이 아니었음을, 그렇게 또 다른 관점을 경험하면서, 한 영혼은 자신도 모르게 치유받고 있었다.      


나 또한 어느 평범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로이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하반신 불구가 되면 비관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자살하고 싶겠다는 생각을 용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추락하면 끝이라는 데 더 이상의 상상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말하는 추락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절망적인 상황뿐만이 아니었음을 조심스럽게 깨우쳐 주고 있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영상미와 독특한 전개 덕분에 보는 내내 황홀했지만 또 한편으론 액자식 구성 때문에 주인공의 서사에 온전히 몰입하기엔 힘들었다. 사실 시각적인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영화 관람의 이유가 충족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에 돌이켜보면 당시의 미학적 충격은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서사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영화를 본 뒤로 추락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보느라고 며칠 동안 주인공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귀여운 알렉산드리아와 훤칠하고 잘생긴 로이 역의 배우 덕분에 잔상에 오래 남았던 것도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영상미 또는 서사에 집중하는지에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감상 또한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간에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 한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이 영화는 그렇다. 마치 놀이동산의 추락하는 자이로드롭을 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순식간에 숨이 멎을 듯한 시각적 경험을 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면 뒤늦게 어떠한 감동을 떠올릴 수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08년 개봉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번에 더 좋은 화질과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여 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공유하고 싶어 영화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내게 영화를 알려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글이 좋았다면
응원 댓글로 특별한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추천 브런치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영화 ‘리얼 페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