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양피지 소설

by 홍윤표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콧구멍이 간지러워 손가락으로 후볐다. 그러자 코딱지 대신 얇고 긴 양피지가 손가락에 딸려 나왔다.
자세히 보자 양피지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고, 그것은 소설이었다.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고, 난 결국 밤을 꼬박 새웠다.
소설의 끝은 '다음 편에 계속'으로 끝맺었다.
그 뒤로 콧구멍이 간지러워질 때마다 후볐고, 소설의 다음 이야기가 계속 딸려 나왔다.
난 소설을 옮겨 적어 출판사에 보냈고, 책은 불티 나게 팔렸다.
소설은 대하장편소설처럼 분량이 매우 길었고,
책이 나올 때마다 출판사는 다음 편을 재촉했다.
콧속은 이미 헐대로 헐었고 코피도 수없이 났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코를 후볐고 소설은 끝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소설은,
내가 코감기에 걸려 콧물을 달고 살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에 전 세계 팬들은 분노했고, 출판사도 나를 닦달했다.
하지만 콧물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양피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감기는 좀처럼 낫지 않았고 그렇게 소설은 결말 없이 끝나버렸다.


그렇게 평범한 생활로 돌아온 지 일 년,
코가 막혀 화장실에서 코를 팽-! 풀자
일 년치 분의 양피지가 돌돌 말려진 채 세면대로 툭 떨어졌다.
양피지에는 그동안 연재 중지되었던 일 년치 분의 소설이 적혀있었고,
난 그걸 다시 돌돌 말아 변기통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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