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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소설] 계단

by 홍윤표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오자 어디선가 썩은 내가 났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안방 침대에 혼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뒤척일 때 이불이 소복거리며 희미하게 냄새가 났다. 남편의 빈자리에 남겨졌던 채취와는 다른 불쾌한 냄새.

이불을 세탁기에 넣으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살폈다. 쓰레기통은 텅 비어 있었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심해졌다. 안방에서만 희미하게 나던 냄새는 며칠이 지나자 집 전체에서 풍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대청소에도 냄새는 떨어지지 않고 집구석구석에 진득하게 눌어붙었다. 난 냄새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닷새 동안의 배우자 사망 특별휴가를 다 쓰고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날 빤히 쳐다봤다. 미영 씨, 왜 벌써 나왔어? 컴퓨터 하단의 날짜를 보니 발인 다음 날이었다.


집 안의 냄새는 썩은 내가 맞았다. 시간이 썩으면서 뿜는 냄새. 남편이 죽은 뒤 집의 시간은 멈췄고, 흐르지 않고 고인 시간에서는 고약한 썩은 내가 났다. 시간이 멈췄는데 부패는 진행되는 아이러니. 집에 들어가면 난 언제나 남편을 화장한 다음 날로 돌아왔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고여만 갔고, 썩은 내는 더 짙어졌다. 난 남편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인천의 친정집으로 거처를 옮긴 건 썩어가는 시간 속에 파묻혀 질식사하는 꿈을 꾼 뒤였다.


울지 않는 날 보며 사람들은 독한 여자라고 혀를 내두르곤 했다. 어떤 슬픔은, 감당해야 할 슬픔이 너무나 거대할 때 그 크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알지 못했다. 슬픔은 너무나 거대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실감하지 못했다. 그 거대한 슬픔을 조금씩 조금씩 삼키고 삼키면, 그러다 내 몸이 슬픔으로 꽉 차고 더 넣을 곳이 없을 때까지 구겨 넣다 보면, 어느 순간 토악질이 나오며 삼켰던 슬픔을 다 토하게 된다. 그리고 불순물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인천집에서 유령처럼 지낸 한 달, 내 삶이 서서히 무너지는 풍경을 마치 제삼자처럼 바라만 봤다. 집에서 시간이 썩는 냄새가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거 같았다.


배 속에 아이가 있다고 병원에서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집 생각이 났다. 남편과 나 오롯이 둘만의 소우주였던 공간. 둘이 연애하면서 5년 동안 조금씩 모았던 돈으로 전세금을 겨우 마련해 들어갔던, 30년도 더 된 낡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어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어두운 계단을 홀로 올라가야 한다고 투정 부리자, 남편은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와 같이 걸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은 둘이 나란히 오르기엔 조금 좁았고, 남편은 항상 조금 앞서 올라갔다. 남편이 계단참을 오를 때마다 머리 위의 센서등이 반응하며 주황색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난 언제나 내 앞에서 발밑을 밝혀주던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랐다. 밭은 숨을 내뱉으며 5층 현관문 앞에 도착하면 남편이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돌아보았다. 괜찮아? 우리 운동 좀 해야겠다.


아파트 주차장 한편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사실상 버려진 자전거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그곳에 나와 남편의 자전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아파트 앞에 있는 좁은 하천길을 따라가면 한강까지 이어진다는 걸 알고 흥분하며 중고로 산 자전거. 딱 한 번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간 적이 있다. 세 시간에 걸쳐 도착한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고 올 땐 지하철을 타고 왔었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져 둘 다 내리 세 시간을 곯아떨어졌었다. 그 뒤로 자전거는 저 상태로 방치되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서서 녹이 슨 채 방치된 두 대의 자전거. 그 자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서로의 옆자리를 지키고 선 자전거들. 자전거 안장에 뽀얗게 덮인 먼지를 손으로 살짝 훔쳤다. 안장에 내 손자국이 또렷하게 남았다. 난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썩은 내가 얼굴에 확 엄습했다. 멈춰 고인 시간이 집 안 여기저기서 썩어가고 있었다. 난 미리 준비해 둔 100리터 종량제봉투에 시간들을 쓸어 담았다. 방구석구석 덕지덕지 붙어버린 시간은 거의 집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장판에서 시간을 떼어낼 때마다 쩌억- 하는 소리가 났다.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과 벽지를 박박 문질렀다. 썩어 문드러진 시간이 지우개 찌꺼기처럼 돌돌 말려 뚝뚝 떨어졌다. 반나절 동안 쓸어 담은 시간은 총 다섯 자루였다. 봉투를 한 번에 하나씩 들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갖다 버렸다. 다섯 번 왕복하는 동안 해가 어느새 지고 있었다. 땀으로 촉촉해진 이마를 훔쳤다. 어두워진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머리 위 전구가 불을 밝혔다. 어두운 주황색으로 물든, 낡고 좁은 계단. 그 계단을 혼자 올랐다.

5층에 도착해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우리 운동 좀 해야겠다. 집 안에선 더는 썩은 내가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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