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 주식회사에 취직했다. 2년간의 구직활동 끝에 시청에서 주최한 취업박람회를 통해 알게 된 회사였다.
빈말 주식회사는 제조업으로 분류되는데, 영업은 이런 식이다.
고객이 빈말을 택배로 보내 주거나 직접 가져오면 우린 그 빈말에 내용물을 꽉꽉 채워 다시 택배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가장 많이 접수되는 빈말은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이고,
고객 게시판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후기는 '좋아하는 사람과 드디어 밥을 같이 먹게 되었어요'이다.
빈말 주식회사에는 몇 가지 회사 방침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신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빈말은 접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죽이고 싶다'나 '죽고 싶다'와 같은 빈말은 절대로 작업하지 않는다.
빈말 주식회사에서 일 한 지 반년이 되어갈 쯤이었다.
창사 이례 가장 크고 중요한 건수가 들어왔다. 택배 상자에 담긴 빈말은 대통령 취임사였고 보낸 이에는 어느 시민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장은 지금까지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을 올 스톱했고 모든 팀을 이번 작업에 투입했다.
과연 취임사에는 빈말들이 가득했고, 전 직원이 일주일간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겨우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밤새 작업한 결과물은 다섯 박스나 되었고, 새벽에 택배차량에 싣고 의뢰인에게 보냈다.
우리는 모두 피곤했지만 들떠있었다.
과연 오늘부터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새벽하늘에 붉은 태양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